유우 (조유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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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고제]]의 아들로, 고제 11년([[기원전 196년]])에 양나라 왕 [[팽월]]이 제거되면서 회양(淮陽)나라의 첫 왕으로 봉해졌다.<ref name="h38"/> 고제는 영천군을 폐지하여 회양나라에 덧붙여주었다.<Ref name="h1">위와 같음, 권1 하 고제본기 하{{위키문헌|:zh:漢書/卷001下|한서 권1 하 고제본기 하}}</ref>
 
[[전한 혜제]] 원년([[기원전 194년]]), 조왕 [[유여의]]가 [[고황후|여태후]]에게 독살당하면서 후임 조왕으로 옮겨 봉해졌다. 여태후가 제후왕이 된 고제의 아들들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여씨 일족들로 채우면서 조유왕도 여태후 7년([[기원전 181년]])에 희생되었는데, 그 경위는 이렇다. 조유왕은 여태후의 일족 여씨를 아내로 두었으나 사랑하지 않았고 다른 첩을 사랑했다. 아내는 여태후에게 “조왕은 '어찌 여씨가 왕이 되랴? 여후가 죽은 후 내가 반드시 그를 치리라.'라고 합니다.”라고 참소했다. 여태후에게 소환되어 장안으로 갔고, 감금되어 식량 공급이 끊어졌으며 혹시 감금을 뚫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자가 있다면 사로잡혀 논죄를 당했다. 결국 굶게 된 조왕은 노래를 짓고 굶어죽었다. 여태후는 조왕의 장례를 민의 예에 따르게 했다. 아들로는 [[유수 (조왕)|유수]]와 [[유벽강]]이 있었으나, 여태후는 조유왕의 아들들 대신 양나라 왕으로 있던 [[유회 (조공왕)|유회]]를 조왕으로 삼았고, 유회가 자결하자 기어이 자기 일족인 [[여록]]을 조왕으로 삼았다.<ref name="h38">[[반고 (후한)|반고]]: 《[[한서]]》 권38 고오왕전제8{{위키문헌|:zh:漢書/卷038|한서 권38 고오왕전제8}}</ref>
== 주석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