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리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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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전쟁 ===
397년에 북아프리카의 [[총독(코메스]]) [[길도]]가 서로마를 버리고 동로마에 가담하자, 스틸리코는 비잔티움 궁정의 변명에 단호하고 결정적인 답변을콘스탄티노플에 보내는항의하는 한편, 원로원에 가서 길도를 '공공의 적'으로 결의해 줄 것과 함께, "우리 식량이 일개 무어인의 마음 하나에 달려 있습니다. 게다가 그 인물은 공급자가 아니라 협박자로 행동하게 되었습니다."라며 군대를 파병할 것을 원로원에 요청했다. 여기에 밀라노에 있던 호노리우스까지 로마로 불러 원로원 회의장에서 길도를 토벌해야 할 필요성을 연설하게 한 다음 원로원이 만장일치로 그 결의안을 채택하고 나서야 군사행동을 개시했다(단, 스틸리코는 원정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대신 길도의 친동생으로 두 아들을 형에게 잃고 이탈리아에 망명해 있던 마스케젤에게 원정군 지휘를 맡겼다).
 
북아프리카의 곡물 수확에 의존하고 있던 로마가 길도의 곡물 수출 금지 조치에 의해 식량문제에 시달릴 것이라는 우려도 전해졌는데, 스틸리코는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갈리아 내륙의 속주에서 거두어들인 대량의 곡물을 론 강의 빠른 물살에 실어, 테베레 강까지 수송해 와서 아프리카 전쟁 내내 로마의 곡물 창고에 가득 채워두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