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읍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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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의 일반적인 높이는 7.5 피트(2.3 미터) 정도였으며 [[부싯돌|수석]]과 [[모르타르]]를 사용해 지어졌다. 제한적이지만 커다란 [[사암]] 덩어리가 사용되기도 했다.<ref name=FreeStow1982P17/> 사암이 사용된 벽의 높이는 불확실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부분은 20 피트(6.1 미터)에 달한다.<ref> Lyle 2002, p. 44</ref> 성곽은 토담 위에 세워졌는데, 토담의 두께는 20 피트(6.1 미터)에서 30 피트(9.1 미터), 높이는 최소 7 피트(2.1 미터)였다. 토담은 너비 59 피트(18 미터) 깊이 16.5 피트(5 미터)의 해자로 보호되었는데, 해자는 장소에 따라 너비가 82 피트(25 미터)에 이르는 곳도 있다.<ref> Frere & Stow 1982, p. 20; Lyle 2002, p. 44</ref> 방벽과 해자 사이에는 너비 10 피트(3 미터)의 통로가 나 있었다.<ref> Lyle 2002, p. 20</ref>
 
성곽에는 성문이 최소 다섯 개 있었는데, 로마도로들의 위치로 밈루어 볼 때 성문이 두 개 더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ref> Frere & Stow 1982, pp. 19–20, 51; Lyle 2002, p. 44</ref> 성문을 나서 주요 도로망에 합류하면 켄트에 이르게 된다.<ref> Lyle 2002, pp. 21–23</ref> 라이딩게이트(Riding gate)는 붉은 벽돌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었는데, 두 개의 방어탑과 한 쌍의 출입용 아치가 있었다. 두 아치는 각각 보행자용과 마차용이었다. 버게이트(Burgate) 역시 이런 구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ref>Frere & Stow 1982, p. 19; Lyle 2002, p. 44; {{cite web | url=http://www.canterbury-archaeology.org.uk/#/riding/4557757563 | title=Riding Gate | accessdate=29 March 2013 | publisher= Canterbury 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Society | separator = ,| postscript = .}}</ref> 워스게이트(Worth Gate), 런던게이트(London Gate), 퀴닌게이트(Queningate)의 출입용 아치는 보다 간단한 구조였다.<ref name=FrereStow1982P19> Frere & Stow 1982, p. 19</ref> 일련의 네모난 망루들이 방벽을 보호했고, 367년 [[색슨족]]이 브리튼을 침공한 이후 망루가 적어도 하나 더 건설되었다.<ref name=FrereStow1982P19/>
 
=== 5세기 ~ 11세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