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무 천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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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무 천황의 제1황자로 태어났으나 일곱 살 때에 아버지 몬무 천황이 죽고 어머니 미야코도 심신이 약해 오랫동안 황자와 만나지 못했고(모자가 서로 만난 것은 천황의 나이 37세 때) 몬무 천황의 모후 겐메이 천황(덴지 천황의 딸)이 황자가 장성할 때까지의 '대리'로서 즉위했다. [[와도]](和銅) 7년([[714년]])에 원복과 함께 정식으로 태자가 되었으나, 태자 자신의 병약함과 다른 황친 세력 및 외척인 후지와라 집안과의 대립 문제로 즉위가 늦춰지면서 대신 몬무 천황의 누나 겐쇼 천황이 다시금 '대리의 대리' 격으로 황위를 잇게 되어, 황자의 나이 24세 때에야 비로소 겐쇼 천황의 양위를 받아 즉위할 수 있었다.
 
치세의 초기는 황친 세력을 대표하는 [[나가야 왕]](長屋王)이 정권을 맡고 있었다. 당시 후지와라 집안은 그들 일족으로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딸인 [[고묘 황후|고묘시]](光明子)가 황후로 세워지기를 바랐지만, 일찍이 [[지토 천황]]의 사례에서도 보이듯 황후는 남편인 천황 사후 '대리' 천황으로서 즉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황족이 아닌 자는 황후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다. 때문에 나가야 왕은 고묘시가 황후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덴표]](天平) 원년([[729년]])에 나가야 왕의 변이라 불리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나가야 왕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반대 세력이 없어지면서 고묘시는 황후가 될 수 있었다. 이는 황족이 아닌 자로서 황후로 책봉된 최초의 사례였다.
 
오늘날에는 고묘시를 황후로 삼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나가야 왕을 제거하기 위해 고묘시의 형제인 후지와라 씨 4형제가 꾀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덴표 9년([[737년]])에 후지와라 4형제를 비롯한 대부분의 정부 고관이 [[천연두]]로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났고, 나가야 왕의 친아우인 스즈카 왕(鈴鹿王)이 지태정관사(知太政官事)로 임명되면서 가까스로 정부 체제가 정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