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음공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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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무제와 [[문목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 중 가장 나이가 많으나, 정확한 생일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의 치세 때 산인(山阴)의 공주로 봉해지고 하집(何戢)과 결혼해 아들 하언(何偃)을 낳았다. 464년 아버지가 죽고 남동생 유자업이 전폐제로 즉위했다. 하루는 산음공주가 전폐제에게 말하길 "우리가 성별은 달라도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는데, 황제께선 만 명의 여자를 궁궐에 거느렸지만 저는 남편이 하나뿐이니 불공평합니다" 라고 했다. 이에 전폐제는 누나에게 30명의 남첩(면수面首)을 하사했다. 또한 누나를 '''회계공주'''(會稽公主)로 격을 높여 주었다.
 
하지만 산음공주는 만족하지 못했고, 신하신하이자 고모부인 [[저연]]이 젊고 잘생긴 것을 보고 전폐제에게 그를 애인으로 내달라고 했다. 전폐제는 허했지만 저연은 거부했고, 산음공주는 저연을 포기했다.
 
465년, 포악음란한 짓을 거듭하던 전폐제가 암살당하고 전폐제와 산음공주의 숙부인 유욱이 즉위하니 그가 [[유송 명제|명제]]이다. 명제는 산음공주와 또다른 동생 유자상(劉子尚)의 부도덕함을 거론하며 두 사람을 자살케 했으니, 이때 산음공주의 나이가 18세에서 19세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