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열황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Xsia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Xsia (토론 | 기여)
2번째 줄:
 
== 생애 ==
어려서 전당현으로 이주했고, 부모를 잃어 아우 [[오경 (후한)|오경]](吳景)과 함께 살았다. 손견은 젊은 시절 고향인 오군에서 아름답고 재주가 뛰어난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무열황후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손견이[[손견]]이 혼담을 넣자 무열황후의 친척들이 손견의 사람됨이 경박하고 사납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손견이 몹시 불쾌해 오씨 가문에 깊은 원한을 품었다. 그러자 무열황후는 자신을 아껴 집안에 화를 불러들일 수 없다며 스스로 손견에게 시집가겠다고 선언한 후 오씨 집안에 허락을 받아 손견과 결혼했다.<ref>진수: 《[[삼국지]]》 권50 오서5 비빈전제5, 孫破虜吳夫人,吳主權母也。本吳人,徙錢唐,早失父母,與弟景居。孫堅聞其才貌,欲娶之。吳氏親戚嫌堅輕狡,將拒焉,堅甚以慙恨。夫人謂親戚曰:「何愛一女以取禍乎?如有不遇,命也。」於是遂許爲婚,生四男一女。</ref>
 
장남 [[손책]]이 죽고 아직 어린 차남 [[손권]]이 그 세력을 잇자, 군정·민정 양면에서 잘 보좌했다.<ref>위와 같음, 及權少年統業,夫人助治軍國,甚有補益。</ref> 손책이 자신의 공조 위등(魏騰)을 죽이려 하고 아무도 말리지 못할 때 홀로 손책에게 말해 위등을 풀어주게 한 일이 있었는데, 무열황후의 지략과 권모술수는 이와 같았다.<ref>우예: 《회계전록》, 삼국지의 배송지 주석에서 재인용, 策功曹魏騰,以迕意見譴,將殺之,士大夫憂恐,計無所出。夫人乃倚大井而謂策曰:「汝新造江南,其事未集,方當優賢禮士,捨過錄功。魏功曹在公盡規,汝今日殺之,則明日人皆叛汝。吾不忍見禍之及,當先投此井中耳。」策大驚,遽釋騰。夫人智略權譎,類皆如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