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앙 조제 드 카르발류 이 멜루 제1대 폼발 후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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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발 후작''' (Sebastião de Carvalho, Marquês de Pombal 1699. 5. 13~1782. 5. 8)은 포르투갈의 정치가이자 실질적인 통치자 였다. 국왕 주제 1세 암살을 기도한 예수회를[[예수회]]를 추방했다. 주제 1세가 재상으로 임명한 폼발은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황폐화된 도시의 재건을 맡아서 도시중심을 현대적 격자 구획으로 바꾸었다.
== 초기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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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리 시절 ==
[[주앙 5세가5세]]가 죽은(1750. 7. 31) 후 왕위계승자인 주세 왕자는 즉위하자마자 폼발을 다른 2명의 총신과 함께 총리자리에 앉혔다. 폼발은 이때부터 포르투갈의 정치를 장악했고 국왕은 그에게 무한한 재량권을 부여했다. 그는 국내산업을 발전시켰다. 활발한 대외무역과 각종 개혁정책으로 국력을 키웠다.
1755년 11월 1일 리스본의 1/3을 잿더미로 만들어 놓은 대지진이 일어나 폼발의 개혁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그는 즉시 군대를 동원하여 보급품을 공급하고 피난처와 병원을 설치했다.황폐화된 도시의 재건을 맡아서 건축가 에우게니오 도스 산투스의 설계에 따라 리스본을 최고의 도시로 발전시켰다.
<ref>{{웹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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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회의 추방 ==
1750년경, 예수회는[[예수회]]는 지상에서 가장 막강한 인재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교황을 포함해서 유럽의 거의 모든 국왕의 고해신부들이었다. 예수회 수장은 모든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사건을을 알고 있었고 그의 병사들은 조직을 위해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들이 남미에 세운 리덕션(선교촌)들은 허브, 피혁,지방,시계와 그 외 다른 물품들을 생산하였고, 이것을 예수회원들은 그들의 범선을 이용하여 유럽에서 무역하여 많은 돈을 모았다. 그 이윤들은 그들이 파괴하기로 맹세한 프로테스탄트 국가들과의 전쟁을 재정지원하는데 사용되었다. 이 모든 부와 권력은 비밀리에 획득되었기에 포르투갈과 스페인 국왕은 리덕션들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758년 9월 3일 밤 예수회에 의한 국왕 주제 1세 살해 음모가 무산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폼발은 예수회의 리덕션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들을 포르투갈의 영지에서 추방시켰다. <ref>에릭 펠프스 <<바티칸 암살단>>P227</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