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헤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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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루돌프 회스|[[나치 독일]]의 부총통을 지낸 사람|[[1940년]] [[5월 4일]]부터 [[1943년]] [[11월]]까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을 지낸 사람}}
[[파일:Bundesarchiv Bild 146II-849, Rudolf hessHeß.jpg|thumb|200px250px|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의 루돌프 헤스(앞줄 왼쪽(1933년)]]
'''루돌프 발터 리하르트 헤스'''(Rudolf Walter Richard Hess, [[1894년]] [[4월 26일]] ~ [[1987년]] [[8월 17일]])는 [[나치 독일]]의 부총통을 역임했던 인물로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주요 인물이자 [[아돌프 히틀러]]의 부관이었다. [[뮌헨 폭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었고, 같이 구금되어 있었던 히틀러가 구술한 내용을 받아적어 '[[나의 투쟁]]' 이라는 책으로 엮어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파일:Rudolf Hess at Nuremberg prison.jpg|thumb|200px|left|뉘른베르크 감옥에서의 루돌프 헤스]]
 
'''루돌프 발터 리하르트 헤스'''(Rudolf Walter Richard Hess, [[1894년]] [[4월 26일]] ~ [[1987년]] [[8월 17일]])는 [[나치 독일]]의 부총통을 역임했던 인물로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주요 인물이자 [[아돌프 히틀러]]의 부관이었다. [[뮌헨 폭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었고, 같이 구금되어 있었던 히틀러가 구술한 내용을 받아적어 '[[나의 투쟁]]' 이라는 책으로 엮어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1894년]] [[4월 26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독일인 무역상 프리츠 헤스(Fritz Hess)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바이에른 주]] 출신의 부유한 상인이었던 클라라 뮌히(Klara Münch)이다. [[1923년]] [[뮌헨 폭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었고, 같이 구금되어 있었던 히틀러가 구술한 내용을 받아적어 '[[나의 투쟁]]' 이라는 책으로 엮어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를 계기로 히틀러의 최측근이 되어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나치당이 집권한 후에는 당과 정부의 2인자인 부총통에 임명되었다. [[유태인]] 등 비아리아 인종들을 합법적으로 탄압하기 위한 [[뉘른베르크 법]]의 입안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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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수사 당국의 발표에 대해 유족들은 '자살이 아닌 타살' 이라고 주장했으나, 부검 후에도 타살 의혹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직도 의혹 제기는 계속 되고 있으며, 그의 영국행에 대한 진의와 함께 일종의 [[음모론]]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사후 [[네오나치]]들로부터 우상화되고 있으며, 매년 기일에는 묘소에서 정치 집회와 관련된 충돌이 빚어졌으나 2011년 7월 묘지 자체가 제거 되었고 시신은 화장되어 강가에 뿌려졌다.
 
==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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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udolf hess.jpg|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의 루돌프 헤스 (앞줄 왼쪽)
[[파일:Rudolf Hess at Nuremberg prison.jpg|thumb|200px|left|뉘른베르크 감옥에서의 루돌프 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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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나치 독일|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