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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궁'''(角弓)은 [[한반도]]의 전통적인 [[합성궁]]으로, [[참나무]], [[산뽕나무]], [[물소뿔]], [[소힘줄]], [[대나무]]를 [[민어부레풀]]로 접합하여 만들었다. 과거 한국에는 10여 가지의 활이 존재하였지만, 현존하는 것은 각궁 하나뿐이다.<ref>[http://www.daegubank.co.kr/ICSFiles/afieldfile/2006/06/16/p07_04.pdf 홀로 깨어 일어난 활의 명인 - 궁장 권영학] [[대구은행 사외보 향토와 문화]]</ref>
#REDIRECT [[합성궁]]
 
각궁은 삼국시대의 맥궁에서 기원하였다. 한국의 활의 역사는 오래 되었지만 각궁이 언제부터 널리 보급되었는지 확실치는 않다. 다만 [[함흥]] [[선원전]]에 [[조선 태조|태조]] [[이성계]]의 유물로서 이 각궁이 보관되어 있었고, 또 [[경국대전]]에 각궁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이미 각궁의 꾸밈새가 정형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중기 이후 각궁은 심신수련을 위해 주로 사용되었으며, [[갑오경장]] 이후에는 국가 제식무기 편제에서 [[활]]이 제외되면서 완전히 군사무기로서의 힘을 잃었다.
 
각궁은 [[영국]]의 [[롱보우]]에 비하면 그 길이는 짧지만 오히려 위력은 강한데 이것은 여러가지 재료를 덧대어 만든 합성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들기가 까다롭고, 특히 물소뿔은 [[인도]]에서 수입해오는 전략 물자로 재료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어 대량 생산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여름에 습기를 먹게 되면 탄성이 떨어지고 초보자가 요령 없이 다루면 파손되기 쉬운 각궁은 오늘날에는 거의 [[개량궁]]으로 대체되고 있는 추세이다.
 
===전수===
1971년에 궁시장이 무형문화재로 처음으로 지정됐다. 당시 활을 만드는 장인은 서울, 경기 부천, 경북 예천에 있었는데, 장진섭, 김장환, 권영만이 각 지역의 대표적 장인이었다.
 
현재, 무형문화재 47호의 보유자는 활과 화살을 나누어 지정되어 있는데, 활은 [[김박영]] 궁장, 화살은 유영기, 김종국, 박호준 시장이 지정되어 있다. 김박영은 부천 활 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고, 유영기는 경기도 파주의 영집궁시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ref>박재광,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07/2010060701937.html 천하제일의 장기 - 조선의 각궁], [[조선일보]]</ref>
 
== 주석 ==
<references/>
 
==외부고리==
* [http://kungdo.sports.or.kr:8088/ 대한궁도협회]
* [http://www.archerynews.net/ 국궁신문]
 
{{궁술}}
[[분류: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