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클레멘스 13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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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8년의 [[콘클라베]]에서 여러 쟁쟁한 후보자들을 물리치고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교황이 되자 전임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접하게 되었다. 문제는 [[유럽]]의 [[군주]]들이 더는 교황을 따르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페브로니아니즘]]과 [[이신론]]이 등장하여 정통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회]]를 추방하기 위하여 결속되어 있었다.
 
예수회 추방 운동은 클레멘스 13세를 늘 괴롭혔다. 1759년 [[포르투갈]]의 재상 폼발, 1764년에는 [[프랑스]], 1767년에는 [[에스파냐]], [[나폴리]], [[파르마]] 등지에서 [[예수회]] 추방 운동이 일어났다. 이는 클레멘스 13세의 수명을 단축시킨 요인이 되었다.
교황 클레멘스 13세는 오랫동안 예수회 탄압을 요구하는 여러 국가의 강력한 압력을 거부해 왔었다. 그러나 1769년 2월 3일 드디어 추기경단 회의를 소집하여 그 결과에 따라 대처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바로 그 전날 밤에 클레멘스 13세는 잠자리에서 갑자기 통증을 느끼며 외쳤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목숨을 잃었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예수회를 탄압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짓이야" <ref>Baron de Ponnat, <<Historie des variations et des condictions de 1'Eglise romaine>>P21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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