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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다노 브루노'''({{llang|it|Giordano Bruno}}, [[1548년]] ~ [[1600년]] [[2월 17일]])는 [[이탈리아]]의 사상가이며 [[철학자]]이다.
 
[[로마 가톨릭]]의 [[도미니코회]]의 수사로 활동했으나, [[수도원]]에서후에 개신교인 [[이단칼뱅파]]으로 여겨졌다개종했다. 가톨릭교회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1576년]]에 [[나폴리]]를 떠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전설]]을 말하거나 학문을 가르쳤다. [[라틴어]]·[[희랍어]]에 능통하였고 다방면에 박식하였다. 그는 [[신플라톤주의]]의 [[피치노]]나 [[피코]]등의 영향을 받고 있어 [[마술 (종교)|마술]]이나 [[점성술]]에도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591년]] [[베네치아 공화국]](현재의 [[이탈리아]]의 일부)에서 잡혀 8년 간의 감옥 생활을 했고, [[로마 교황청]] 이단 심문소로부터 이단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로마에서 공개적으로 [[화형]]에 처해졌다. 화형을 당할 때 "말뚝에 묶여 있는 나보다 나를 묶고 불을 붙이려 하고 있는 당신들(그를 사형하려는 로마 교황청측) 쪽이 더 공포에 떨고 있다" 라는 내용의 발언으로 유명하다.
 
브루노는 [[베네치아]]에서 변호에서 교회의 교리적 가르침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철학을 유지하는 방법을 썼다. 특히 브루노는 세상이 하나뿐이 아님을 믿었으나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그 생각을 포기하라고 강요당했다.
 
== 브루노의 동상 건립 ==
빅토르 위고, 헨리 입센, 무정부주의자 바쿠닌 등의 지식인들은 1899년 사상의 자유를 위해 순교한 브루노를 기리며 그가 화형 당한 로마의 캄포데 피오레 광장에 동상을 건립했다. 이에 분개한 교황 레오 13세는 노구의 몸을 이끌고 항의의 금식기도를 했다.
 
브루노의 동상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브루노에게.
그대가 불에 태워짐으로써 그 시대가 성스러워졌노라"
 
 
== 주석 ==
 
{{들머리|천문학}}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