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병 박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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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Dragonnades430.jpg|right|thumb|250px|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용기병의 박해를 재연한 당시의 판화]]
 
'''용기병의 박해'''(Dragonnades : 1683~1686)는 독실한 가톨릭 교도인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용기병들을 동원하여 개신교인들을 박해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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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네덜란드가 5~6만명의 개신교인을 받아들여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고 잉글랜드가 4~5만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그 다음으로 독일(2만5000~30000명), 스위스(2만2000) 아일랜드(10000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망명 개신교인들은 가톨릭이 다수를 차지하는 아일랜드나 루터파의 스칸디나비아, 그리스 정교를 믿는 러시아 등에도 스며들면서 근대 유럽의 종교적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데에도 기여하였다.
 
== 강제 개종에 대한 지탄 ==
용기병의 박해는 인간의 양심을 폭력으로 억누르려는 무력탄압으로 지탄 받았다. 한때 가톨릭 교도였으며 [[예수회]] 학교에서 공부를 한바 있는 삐에르 벨르(Pierre Bayle)는 《루이 대왕 치하의 완전한 가톨릭 국가 프랑스에 대하여(Ce que c'est la France toute catholique sous le rėgne de Louis Le Grand)》라는 책자에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인용문| "만약 루이 대왕 치세하의 전 가톨릭 국가라는 말이 나타내는 영향력과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프랑스를 부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이름하에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일들을 특히나 오랫동안 저질렀고 선량한 인사라면 가톨릭 교도로 불리우는 것을 부당한 것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기독교적인 왕국안에서 당신들이 행한 것으로 인하여 이후 '가톨릭'이라고 하는 말은 파렴치한 사람들의 종교를 가리키는 말이 될 것이다."<ref>Pierre Bayle《루이 대왕 치하의 완전한 가톨릭 국가 프랑스에 대하여(Ce que c'est la France toute catholique sous le rėgne de Louis Le Grand)》p33~34</ref>}}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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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프랑스의 역사]]
[[분류:로마 가톨릭 교회의 학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