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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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화해하지 못한 위고는 교회의 기도마저 거부했다. 1881년 8월 31일 이런 유언장을 썼다.
 
{{인용문2|“신과 영혼, 책임감. 이 세 가지 사상만 있으면 충분하다. 적어도 내겐 충분했다. 그것이 진정한 종교이다. 나는 그 속에서 살아왔고 그 속에서 죽을 것이다. 진리와 광명, 정의, 양심, 그것이 바로 신이다. 가난한 사람들 앞으로 4만 프랑의 돈을 남긴다. 극빈자들의 관 만드는 재료를 사는 데 쓰이길 바란다.(...)내 육신의 눈은 감길 것이나 영혼의 눈은 언제까지나 열려 있을 것이다. 교회의 기도를 거부한다. 바라는 것은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단 한 사람의 기도이다.”}}
 
그는 1885년 5월22일 눈을 감았고 그의 죽음은 국장의 예를 받았고 그의 유해는 팡테옹에 안장되었다.<ref>앙드레 모루아《빅토르 위고》(우석)</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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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에 쓴 《황량한 세월(Les Années Funestes)》에서 그는 광산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렇게 그렸다.
 
{{인용문2|"그 사람,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나, 우리는 모두 광부였다.
 
작업은 가혹했고 주인은 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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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조금 줄이고 임금을 조금 낫게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우리에게 주었는가? 총탄이다."}}
 
== 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