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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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세계 ==
=== 낭만주의 ===
낭만주의극의 지도이론은 1827년의 <크롬웰(Cromwell)>의 서문에 제시되었다. 위고는 여기서 시의 발전역사를 서술하여, 원시 시대를 서정시, 고대를 서사시, 중세 이후를 극의 시대라고 했다. 그리고 새로운 낭만주의의 연극은 근대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적 2원론에 의거하여 영혼과 육체, 하늘과 땅, 숭고함과 그로테스크 사이에 영원히 되풀이되는 대화를 극의 진수로 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현대의 완전한 예술양식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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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위고의 희곡에는 강인한 극행위(劇行爲)가 결여되어 있으며 극의 본질인 갈등보다는 줄거리나 대사의 서사성이나 서정성에 역점을 두는 결점이 있다. 당시 관객의 취미는 낭만주의 극의 용만성(冗漫性)과 소란함에 싫증을 느껴 고전적인 간결함을 구하고 있었으며, [[뮈세]]는 일찍부터 그 폐단을 통감, 낭만주의의 시적 환상을 고전적인 절도로 다룸으로써 참된 걸작을 남겼다.
 
=== 민중 예술===
그의 작품에는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 묻어 있다.
위고는 민중예술을 특히 강조하였다. 그는 "예술은 민중을 위해 만들어지고 모든 것은 신으로 부터 와서 민중에게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신은 원칙이고 민중은 "예술이 도달해야 하는 종착점" 이며 "예술과 연극은 민중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ref>김찬자《빅토르 위고 연극과 그로테스크 미학》(한국프랑스학논집 제69집)(</ref> 그의 작품에는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 묻어 있다.
1869년에 쓴 《황량한 세월(Les Années Funestes)》에서 그는 프랑스의 광산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렇게 그렸다.
 
{{인용문2|"그 사람,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나, 우리는 모두 광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