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 (정치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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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金東英, [[1936년]] [[12월 23일]] ~ [[1991년]] [[8월 19일]], [[경상남도|경남]] [[거창군|거창]])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박정희]] 정권 때 야당정치인으로 활동하였으며, [[김영삼]]의 측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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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농업고등학교]] 졸업
[[1966년]] 국회전문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해서, [[1970년]]대에 [[신민당 (1967년)|신민당]]의 유력 주자인 [[김영삼]]에 의해 발탁되었다. 이후 김영삼의 측근으로 활동하여 일명 좌동영 우형우 라는 별명이 생겨나기도 했다. 9대, 10대 경남 거창/산청/함양 지역구의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정치적으로 김영삼의 계보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최형우]]와 함께 대표적인 상도동 가신그룹으로 꼽히며 "좌동영 우형우"로 불렸다.
[[1980년]] 신군부 집권이후 국회가 해산되어 국회의원직을 잃고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에서 고초를 겪고, 정치규제에 묶여 출마하지 못하였지만, 김영삼과 [[김대중]]이 연합하여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활동하였다. 정치규제가 풀리자 [[1985년]] 12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당시 야당 사상 최대의 의석수를 가졌던 103석 [[신한민주당]]의 원내총무를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통일민주당의 부총재를 맡았다. [[1990년]] 3당합당에서 김영삼을 따라 [[민주자유당|민자당]]에 합류하여 이후 민자당 원내총무, 1991년에는 정무장관을 맡았다.
한편 그는 [[국군보안사령부]]의 사찰대상 중 한사람이 되어 [[노태우 정부]]로부터 감시당하였는데, [[1990년]] [[10월 4일]] 오후 6시 40분쯤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때문에 "뚝심의 정치인"이라고 불리며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을 누구보다 열망했으나, 김영삼이 대통령 당선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불과 대선 1년을 앞두고 [[암]]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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