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앙투안 레옹 드 생쥐스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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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6세의 처형으로 유럽 각국의 간섭 전쟁이 시작되었고, 공안위원회의 주요 멤버인 로베스피에르의 측근으로 수완을 발휘한다. 국민공회를 휘어잡은 그는 1793년 5월 초 국민공회의 공안위원회의 상임위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공안위원회 상임위원이 되자 그는 우파와 좌파 내 일탈자들을 모두 색출하여 숙청하였다. 그러나 [[부르주아]]층은 간과했는데 이때 살아남은 부르주아층이 후일 그의 급진성에 불만을 품고 [[테르미도르의 반동]]을 일으키게 된다.
 
[[1793년]] [[국민공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의회를 장악한 생 쥐스트는 [[1794년]] [[3월]] [[방토즈 법령]]을 제정하여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방토즈 법령은 혁명의 적으로 규정된 왕당파,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 계급, 부르주아층이 소유한 재산을 혁명 정부에서 몰수해 가난한 애국자들에게 분배한 것이었다. [[1794년]] [[6월 26일]]에는 [[오스트리아]]에 대한 공격으로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플뢰뤼스로 직접 프랑스군을 이끌고 출격하여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여 명성을 쌓았다.
 
[[1794년]] 초부터 그는 〈공화국 제도에 관한 단상 Fragments sur les institutions républicaines〉을 기초했는데, 이는 이전에 공화국 헌법보다 훨씬 급진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1794년]] [[7월 27일]] [[테르미도르의 반동|테르미도르의 쿠데타]] 다음날, 반대파의 방해로 마지막 연설도 하지 못한 채, 로베스피에르 등과 함께 26세의 나이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