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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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은 영국 런던의 펜톤빌(Pentonville)에서 태어났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제임스 밀]]의 6남매 중 장남이었다. 존 스튜어트의 교육은 그의 아버지에 의해서 주로 이뤄졌고, 때로 [[제러미 벤담]]과 프란시스 플레이스(Francis Place)에게 도움을 받았다. 제임스 밀은 지극히 엄격한 방식으로 존을 양육하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잘못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동생들 말고는 같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여지를 차단했다. 벤담을 지지하고 관념 연합설에 찬성한 아버지 밀은 벤담과 자기가 사망한 후에 공리주의의 전파와 실천을 이어갈 후계자로서, 천재적인 지식인을 만들어낸다고 하는 명시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두드러지게 조숙한 아이였다. 세 살에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알고 있던 영어 단어에 상응하는 그리스어 단어들을 배웠다. 여덟살이 될 때까지 그는 [[이솝]]의 《우화들》, [[크세노폰]]이 쓴 《퀴로스 왕의 아시아 원정기》(Anabasis),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그리스어로 읽었고, 루키아노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이소크라테스 그리고 [[플라톤]]의 대화편 중 여섯 편을 그리스어 문장으로 접했다. 아울러 영어문헌으로는 대단히 많은 분량의 역사책들을 읽었고, 산수를 터득한 상태에 도달했다.
 
여덟살부터는 라틴어와 유클리드와 대수(algebra)를 배우기 시작했고, 동생들에게는 가정교사 역할을 수행했다. 여전히 주로 역사책을 읽었는데,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타키투스, 호메로스, 디오니소스, 소포클레스, 유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투키디데스 등, 당시 일반 학교와 대학에서 읽히던 라틴어와 그리스어 고전 작품들을 모두 섭렵했다. 그리하여 열 살이 되었을 때에는 플라톤이나 데모스테네스의 원전을 술술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로 하여금 시를 공부하고 지어볼 필요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가 초기에 지은 시 가운데는 《[[일리아스]]》의 이야기를 연장해서 지어본 습작도 있다. 남는 시간 동안에는 자연과학 서적과 《[[동키호테돈키호테]]》나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대중소설도 읽었다.
 
제임스 밀은 1818년에 《[[영국령 인도의 역사]]》를 출판했다. 그 즈음에 열 두 살이 된 존 밀은 스콜라철학의 논리학을 치밀하게 공부하는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서들을 원전으로 읽었다. 이듬해에는 정치경제학 공부를 시작하여,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를 공부했다. 이는 자본, 노동, 토지를 생산의 삼요소로 바라보는 고전경제학의 시각이 밀 부자에 의해 완성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버지 밀은 산책시간을 이용해서 아들 밀에게 정치경제학을 강의했고, 아들은 배운 내용을 보고서로 만들어 제출하여 교정을 받았는데, 이 원고는 후일 아버지 밀이 출판한 『정치경제학 요론』의 초고가 되었다. 이 책은 리카도 경제학을 충실하게 답습한 교과서로서 당대를 풍미했다. 리카도는 아버지의 가까운 친구로, 소년 존을 자주 집으로 불러서 함께 산책하면서 정치경제학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밀은 아버지의 교육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