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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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에 기초한 종법 질서를 중심으로 통제력을 유지했던 중국의 봉건제와 달리 유럽의 봉건제는 혈연이 아닌 '''쌍무적 계약 관계'''로 통제력을 확보했다. 주군은 보호를 제공하고 가신은 충성을 제공한다는 상호간의 의무를 기초로 계약을 맺는 것으로 농노와 영주 사이의 관계가 이에 해당했다. 영주와 상위 영주 간에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계약이지만 세부적으로 영주는 세금과 일정 기간의 군사적 봉사를 제공하고 상위 영주는 토지(봉토)를 제공하는 관계였다. 봉토의 소유권과 충성 계약은 세습되었으며, 혼인과 상속을 통해 이전될 수 있었다. 또한 쌍무적 계약이었으므로 의무가 지켜지는 한 영주의 거취는 자유로웠으며, 이를 통해 여러 명의 상위 영주를 섬기고 다수의 봉토를 받는, 혹은 혼인과 상속을 통해 다수의 봉토를 획득함으로써 여러 명의 상위 영주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국왕조차도 이러한 혼인과 상속을 통해 직할령 혹은 직속 영주를 확대하는 정책을 취했다. 충성을 맹세한 상위 영주가 다수이다보니 군사적 봉사를 제공할 때 어느 영주를 우선으로 두는지에 대한 계약 관계가 따로 존재하기도 했다.
 
== 일본의 봉건 제도 ==
[[일본]] [[에도 시대]]에 존재한 [[다이묘]]와 이들이 다스렸던 [[번 (행정 구역)|번]] 등의 제도를 봉건 제도라 불렀다. 이는 당대 일본 유학자들이 자국의 정치·사회 상황이 중국의 봉건 제도와 유사했다고 보고 같은 호칭으로 불렀던 것이다. 당시 일본의 봉건 제도는 유럽과 유사한 형태였다고 평가된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