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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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전쟁'''({{llang|fr|Guerre d'Algérie}}, {{llang|ar|ثورة جزائرية}})은 [[1954년]]부터 [[1962년]]까지 [[프랑스]]와 [[알제리]] 독립 운동 세력이 벌인 독립 전쟁으로, 결국 알제리는 프랑스에서 독립을 얻었다.
 
이 전쟁은 [[탈식민지화]]에서 중요한 전쟁이었으며, [[게릴라전]], [[마키]], 민간인에 대한 [[테러]], 양측의 고문 자행, 프랑스 군대의 대테러 작전 등 복잡한 성격을 보인 전쟁이었다. 전쟁은 6명의 [[민족 해방 전선 (알제리)|민족 해방 전선민족해방전선]](FLN)의 구성원들이 [[1954년]] [[11월 1일]]에 "[[붉은 제성인의 날]]"(Toussaint Rouge)에 일으켰으며, [[프랑스 제4공화국]]의 기반에 타격을 주어 정권이 무너지는 원인이 되었다.
 
알제리 독립 전쟁은 다자적인 복잡한 분쟁으로, 여러 세력들이 서로 대립하였다. 독립 세력 편의 민족해방전선은 [[알제리 민족 운동]](MNA)과 적대하며 싸웠으며, 프랑스 본토에서는 카페 전쟁으로 싸웠다. 또 프랑스 편에서는 우익 [[비밀 군사 조직]](OAS)이 알제리 민족해방전선과 더불어 프랑스 정부와 투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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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전쟁은 현대 알제리 역사의 시작점이었다. 프랑스와 알제리 사회 모두 전쟁으로 오랫동안 상처를 남겼다. 1997년 프랑스 의회 선거에서 [[사회당 (프랑스)|사회당]]이 승리하자 1999년 6월, 전쟁이 끝난지 37년 만에 [[프랑스 의회]]는 이것이 "전쟁"이었음을 인정하였으며, [[1961년 파리 학살]]은 2001년 10월에서야 프랑스 정부가 인정하였다.
 
그러나 민족해방전선이 저지른 [[1962년 오랑 학살]]을 알제리 정부는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와 알제리의 관계는 여전히 이 전쟁의 영향을 받고 있다. 탈식민지 사상의 저서로 유명한 [[프란츠 파농]](Frantz Omar Fanon)은 알제리 전쟁 초기에 블리다에 있는 자신의 병원을 도피 중인 민족주의 운동가들에게 은신처로 제공했으며, 이후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의 외교를 담당하게 된다.
 
탈식민지 사상의 저서로 유명한 [[프란츠 파농]](Frantz Omar Fanon)은 알제리 전쟁 초기에 블리다에 있는 자신의 병원을 도피 중인 민족주의 운동가들에게 은신처로 제공했으며, 이후 [[민족 해방 전선 (알제리)|민족 해방 전선]](FLN)의 외교를 담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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