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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는 또, 감은사가 완성된 이듬해 동해 가운데 작은 섬 하나가 감은사 쪽으로 내려왔다는 보고를 듣고 일관에게 점을 쳐 보게 한 결과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이 33천으로 돌아간 김유신과 함께 신라를 지킬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을 내릴 것이라는 괘가 나오자 신문왕이 기뻐하며 이틀 뒤에 이견대로 가서 그 산을 몸소 바라보았다고 적고 있다. 그 뒤 신문왕은 동해의 용으로부터 검은 옥대를 선사받았고, 용의 계시대로 섬 위에 솟아 있던 대나무를 베어다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는 신비한 피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 경상도 경주부조에는 이견대가 경주부 동쪽 50리 해안에 있었다고 적고, 《삼국유사》의 기록을 소개하는 한편 이견대 아래로 70보(《[[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0보) 거리의 바다에 네 귀퉁이가 마치 네 개의 문이 우뚝 솟은 모양과 같은 돌이 신라 시대에 문무왕을 장사지낸 곳이며 현재(조선 초)까지도 사람들이 대왕암이라 부르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 위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