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머스 식민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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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왕은 [[메타코멧]] 등 다른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마사소이트]] 아들 중 [[왐파노아그 족]]의 추장의 자리를 승계한 가문의 훌륭한 지도자였다. 그는 형 와무숫타(별명 알렉산더)의 [[1662년]] 갑작스런 죽음으로 추장을 계승하게 되었다.<ref>Philbrick (2006) p 205</ref>
 
전쟁의 원인이 된 것은 늘어난 영국인 개척자와 그만큼 늘어난 그들의 토지 수요였다. 인디언의 토지 구입이 늘어남에 따라 인디언은 좁은 영토로 제한되게 되었다. 필립 왕 같은 인디언 지도자들은 점점 잃어가는 토지에 분개를 했고, 그것을 연기하거나 혹은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ref>Philbrick (2006) pp 207–208</ref> 특히 관심이 쏠리고 것은 스완시스완지 타운 건설이었고, 거곳은 왐파노아그 족의 수도 마운트 호프에서 몇 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플리머스 의회가 군사력을 사용하여 왐파노아그 족의 토지를 마을의 개척자에게 매각하도록 강제하기 시작했다.<ref name="friends"/>
 
분쟁의 계기가 된 것은 [[1675년]] 존 사사몬이라는 "기도하는 인디언"(기독교로 개종한 인디언)의 죽음이었다. 사사몬은 필립 왕의 조언자이며 친구이기도 했지만, 사사몬이 기독교로 개종하자 두 사람은 결별했다.<ref name="friends">Aultman, Jennifer L. (2001). "From Thanksgiving to War: Native Americans in Criminal Cases of Plymouth Colony, 1630–1675". The Plymouth Colony Archive Project. Retrieved 2008-11-12.</ref> 사사몬의 살인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필립 왕의 가장 상위의 부관 중 한명이었다. 12명의 영국인과 6명의 기도하는 인디언 배심원은 살인죄 혐의를 받고 있는 피고인 인디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ref>Philbrick (2006) pp 221–223</ref> 오늘날까지 필립 왕의 부하가 실제로 살인을 저질렀는 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ref name="friend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