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희 (1905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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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朴相熙, [[1906년]] [[9월 10일]] ~ [[1946년]] [[10월 6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했던 [[박정희]]는 그의 동생이고 <ref name="대자보">[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12478&section=section1&section2= 항일좌익운동가 박상희와 박정희 일가], 대자보. </ref> 정치인 [[김종필]]은 그의 사위이다.
 
[[일제 강점기]]에 [[신간회]], 1934년 [[조선중앙일보]]의 지국장, [[1935년]] [[동아일보]] 기자 등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1940년대 [[여운형]]이 결성한 [[건국동맹]]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구미지부를 창설 하였고, [[1946년]]에는 [[민주주의민족전선]] 선산군지부 사무국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대구 10.1사건]]으로 [[경상북도]] 일대에 시위가 확산되자 [[10월 1일]] 당시 경찰관과 시위대를 중재하던 중 [[경찰]]의 [[살해|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출신이며, [[본관]]은 [[고령 박씨|고령]](高靈)이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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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민주주의민족전선]] 선산군지부 사무국장을 맡는다. 신탁통치가 결정되자 박상희는 [[신탁통치 반대운동]]도 지도하였다. 그러나 [[김일성]], [[박헌영]] 등 공산주의자들이 모스크바 삼상회의 지지의 입장으로 돌아서버리자 그는 침묵을 선택했다.
 
[[1946년]] [[10월]] 대구 항쟁 사건이 발생하자발생하였고 박상희는 [[10월 3일]] 구미경찰서를 공격하였으나 분노한 군중들로부터 경찰관을 보호하여 인명살상을 막았다.<ref name="강준만">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 (인물과사상사, 2004) 299쪽. </ref> 그러나 [[10월 6일]] 대구 항쟁 사건의 중재를 나섰다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우익청년단체와 경찰이 발포한 총을 맞고 살해되었다.<ref name="대자보" /><ref name="강준만" /> 시신은 [[대구광역시|대구]]에 살던 매제 [[한정봉]]의 집으로 옮겨져 수습되었다.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