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테만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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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부터 1944년 까지 일본군은 중앙 태평양 지역에서 부터 남 태평양 지역에 이르기까지 점령하고 있던 지역을 하나씩 상실해가며, [[솔로몬 제도]]나 [[비스마르크 제도]], [[애드미럴티 제도]], [[뉴기니 섬]], [[마샬 군도]], [[웨이크섬]]과 같은 지역의 기지는 고립되고 있었다. 1944년 6월에는 미해군 5함대 소속의 [[고속 항공모함 기동함대]](Fast Carrier Task Force)에 의하여 수행된 여러 상륙 작전에 의하여 [[로타섬]]을 제외한 [[마리아나 제도]]의 대부분의 섬이 미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 이러한 미군의 공격에의하여 일본의 근접 방어선(inner defense ring)이 붕괴되었으며, 미군은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와 같은 장거리 폭격기를 이용하여 일본 본토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비행 기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필리핀 해전]]에서 일본 재국 해군은 반격에 나섰지만, 미해군은 3척의 일본군 항공모함을 파괴하였고 다수의 전투함에 피해를 주었으며, 특히 600기 가량의 일본군 항공기를 파괴하였다. 이후 일본 재국 해군은 항공모함 기반 항공세력과 숙련된 조종사를 거의 잃게 된다.<ref name="Fuller1956"/>
 
이후의 작전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니스트 킹]] 해군 중장과대장과 다른 합동 참모부 수뇌부는 일본군을 필리핀에 묶어 높고 [[타이완]](당시 포르모자 공화국)을 공격하여 미군과 오스트레일리아군이 일본과 남아시아 사이의 병참선을 끊을 수 있기를 바랐다. 미육군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에 대한 공격의 선봉에 서기를 바랐다. 이는 필리핀이 일본의 또다른 병참선이기도 했으나, 개인적으로 1942년 필리핀 철수 당시 남긴 "나는 돌아오겠다(I shall return)"는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체스터 니미츠]] 제독을 포함한 연합참모부 밖의 고급 지휘관들은 필리핀 주둔의 일본 항공 세력이 우회하기에 너무 강력하다고 생각했다. 니미츠와 맥아더는 초기에 레이테만 전투에 반대하였다. 니미츠는 타이완이 일본의 동남아시아 병참선 차단이나 미군의 중국 본토 전개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으나, 맥아더는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루스벨트 대통령]]과 맥아더, 니미츠 사이의 회의에서 필리핀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목표임을 확인하였으나, 필리핀 공격에 대한 결정이 바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ref>{{cite book | chapterurl=http://www.history.army.mil/books/70-7_21.htm| chapter= Chapter 21: Luzon Versus Formosa | last= Smith |first= Robert Ross | date= |month= | title = Command Decisions | url = http://www.history.army.mil/books/70-7_0.htm| publisher= [[United State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id = CMH Pub 70-7| year = 2000| origyear = 1960 | pages= | accessdate=8 December 2007 | archiveurl= http://web.archive.org/web/20071230145455/http://www.history.army.mil/books/70-7_0.htm| archivedate= 30 December 2007 <!--DASHBot-->| deadurl= no| quote= "Meeting with President Franklin D. Roosevelt in a conference at Pearl Harbor in late July 1944,... MacArthur then argued persuasively that it was both necessary and proper to take Luzon before going on to Formosa, while Nimitz expounded a plan for striking straight across the western Pacific to Formosa, bypassing Luzon. Apparently, no decisions on strategy were reached at the Pearl Harbor conferences. The Formosa versus Luzon debate continued without let-up at the highest planning levels for over two months, and even the question of bypassing the Philippines entirely in favor of a direct move on Formosa again came up for serious discussion."}}</ref> 그러나 결과적으로 니미츠는 맥아더의 계획에 동의하게 된다.<ref name="Morison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