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왕: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HotCat을 사용해서 분류:고수전쟁을(를) 삭제함, 분류:여수전쟁 관련자을(를) 추가함
도로짱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42번째 줄:
수 양제는 여러 차례에 걸쳐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라고 요구하였으나, 고구려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수 양제는 고구려를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대군을 조직하였으며, 수나라의 침입을 예상한 고구려는 [[608년]] 신라의 북쪽 변경을 습격하여 8천 명을 포로로 잡았고, [[우명산성]]을 함락시켜 신라의 북진을 차단하였다. 그리고 다시 여러 차례에 걸쳐 신라와 백제를 공격하여 [[고구려 양원왕|양원왕]] 때 잃었던 [[한강|아리수]] 이북의 영토를 거의 회복하였다.
 
[[611년]] 수 양제는 군사를 탁군(啄郡)에 집결시킨 뒤, [[612년]]에는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이때 수나라의 군대는 총 113만 3800명<ref> 여기에서 대군이 실제로 113만 대군인지는 많은 논란이 있다.{{출처}} </ref>이었다.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평양성]]을 함락시킨다는 목적 아래 수 양제가 직접 이끄는 좌군은 요수를 넘어 [[요동성]]을 포위하였다. 하지만 요동성이 좀처럼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무렵 좌군의내호아가 일부가이끄는 배로해군이 바다를 건너 강을 따라 평양성으로 향했다. 하지만 고구려군이 이미 그들의 진입로를 예상하고 매복을 하고 있다가 급습하여, 수나라 함대는 대패하여 물러났다.
 
그 후 수나라 군대는 진퇴를 거듭하며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양제는 [[우중문]]과 [[우문술]]에게 30만 5천의 별동대를 내어 곧바로 평양을 함락시키려 하였으나, 살수에서 [[을지문덕]]에게 대패하여 기세가 크게 꺾여 퇴각하고 만다 ([[살수대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