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의 항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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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
오늘날 삼별초의 난은 외세 침략에 대해 완강한 저항을 한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신 사병 집단의 저항 정도로만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원래 삼별초는 처음부터 몽골과 대항해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만약 원나라에서 귀국하는 원종이 강화도에 들려서 삼별초 군의 호위를 받으며 개경으로 당당히 돌아갔다면.... 삼별초는 기꺼이 국왕 원종의 자랑스러운 친위군을 자처하면서, 자연히 원종과 사돈 나라안 원나라에도 충성했을 것이다. 분명하다. 삼별초 군은 일관된 주인을 섬긴 군대가 절대로 아니다. 최씨 정권, 김준, 임연... 그들의 주인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하지만 원종과 원나라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충분히 자기 편으로 할 수 있었던 삼별초를 적으로 삼는 실수를 저질렀다. 삼별초 항쟁 최대의 수혜자는 바로 호조 도키무네 일본이다. [[1978년]] 삼별초의 난을 기리기 위한 기념물이 제주도에 세워졌다. 진도에 있는 [[용장산성]]과 같은 유적지는 관광지로 유지되고 있다.
 
== 읽을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