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크부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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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크보르지긴 부케아리크부카''',({{llang|mn|{{만몽 '''아리크유니코드|ᠪᠣᠷᠵᠢᠭᠢᠨ<br 부카''',/>ᠠᠷᠢᠭᠪᠦᠬᠡ}}|Borǰigin '''아릭Ariq 부케'''Böke}}, 또는{{한자|孛兒只斤 '''아라 부가'''(阿里不哥|패아지근 아리불가}}, [[1219년]] ~ [[1266년]])는 [[톨루이]]와 [[소르칵타니]]의 말자이다. 그의 형제는 [[몽케]], [[쿠빌라이]], [[훌라구]] 등이 있었다. 휘는 '''보르지긴 아리크부카'''({{한자|孛兒只斤 阿里不哥 패아지근 아리불가}})이다.
 
[[1259년]] 제4대 대칸인 [[몽케]]가 남송 원정 중에 병사하고, 몽골 원에 있던 수도 [[카라코룸]]을 수비하던 막냇동생 아리크 부케는 몽케파의 왕족을 모아 [[쿠릴타이]]를 열어 서부의 차가타이 가문 등 여러 왕가의 지지를 얻어 대칸의 지위를 얻었다. 이에 몽케와 함께 남송 원정 중이던 둘째동생 [[쿠빌라이]]는 윤11월에 군대를 되돌려 [[내몽골]]에 들어서 동쪽 3왕가(칭기즈칸의 동생 가계)등의 지지를 얻은 다음, 이듬해 [[3월]]에 자신의 본거지였던 [[내몽골]]의 [[개평부]](開平府 : 훗날의 [[상도 (지명)|상도]])에서 쿠릴타이를 열어 대칸의 지위에 앉았다. 이로써 몽골 제국은 사성 처음으로 몽골고원 남북에 두 명의 대칸이 들어서게 된다. 몽케의 장례를 치르고, 제도(帝都) [[카라코룸]]에서 즉위한 아리크 부케가 대칸으로서의 정통성은 확보한 셈이었으나, 군사력을 장악한 쿠빌라이 역시 아리크 부케를 배신자로 여기고 자신이야말로 정당한 대칸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