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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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화문과 주변 ===
[[파일:Donhwamun.jpg|thumb{{참고|돈화문]]}}
{{문화재 정보
 
| 국가 = {{KOR}}
| 유형 = [[대한민국의 보물 (제301호 ~ 제400호)|보물]]
| 이름 = 창덕궁 돈화문<br />(昌德宮 敦化門)
| 번호 = 383
| 그림 = Korea-Seoul-Changdeokgung-Donhwamun-02.jpg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2-71)
| 시대 =[[조선시대]]
| 지정 = [[1963년]] [[1월 18일]]
| 소유 = 국유
| 수량 = 1동
| 문화재청 = 12,03830000,11
}}
'''돈화문'''(敦化門)은 창덕궁의 정문이다. 조선 태종 12년([[1412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지금의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선조 40년(1607년)에 재건하여 원년에 완공한 것이다.<ref name="yi62"/> 이때의 모습이 현재까지 남아있어,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으로 유일하게 정면이 5칸 규모로 되어 있다.<ref name="yi62"/> [[1963년]]에 [[보물]] 제383호로 지정되었다. 돈화문은 궁궐의 정문이나 창덕궁 서남쪽 모서리에 있는데, 그 이유는 산자락에 자리잡은 창덕궁의 지리적 특수성 때문이다.<ref name="ch24">최종덕, 24쪽.</ref> 궁궐 정면에는 북악의 매봉이 연결되어 있고, 이곳에는 조선의 가장 신성한 공간인 종묘가 있어 창덕궁의 정문이 들어설 수 없었다.<ref name="ch24"/> 또 정궁인 경복궁과 위치상 가까우며, 예부터 대문에서 내당이 직접 보이지 않도록 배치하는 기법과도 관련이 있다.<ref name="yi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