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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야 왕이 왕의 부모와 쇼무 천황 이전 역대 천황을 위해 발원하고 와도 5년([[712년]])과 진키 5년([[728년]]) 5월 두 번에 걸쳐 사경한 《대반야경》(大般若經) 1부(6백 권)는 《나가야 왕 원경》(《진키경》)의 일부로써 남아 전한다.
* [[779년]] 완성된 《도다이와조토세이덴》(唐大和尙東征傳)에는, 당의 승려 감진(鑑眞)이 일본의 유학승 에이에이(英叡), 후쇼(普照)에게 "일찌기 일본국의 나가야 왕께서 불법을 숭상하시어, 당의 승려를 위해 1천 장의 가사를 기증하셨다"고 말했다는 기술이 있다. 그 가사 가운데 한 벌에는 가장자리에 "산천과 지역이 달라도 풍월천은 같고, 여러 불자를 맞아 함께 내연을 맺는다"는 글귀를 수놓았다고 한다.
* 반면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 중권1에는, 쇼무 천황이 대법회를 열었을 때 태정대신 정2위 나가야 왕이 신분 천한 사미승의 머리를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민중에게 전파된 불교 설화에서 나가야 왕의 불교를 귀족 불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빗댄 것으로 해석된다.
 
== 자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