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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경공양원문(落慶供養願文) ===
주손지와 관련한 중요사료 가운데 하나로써 「주손지낙경공양원문」(中尊寺落慶供養願文)이라 불리는 문서가 있다. 이는 후지와라노 기요히라가 덴지 3년([[1126년]]) 3월 24일자로 진호국가(鎮護国家)를 위해 대가람 하나를 지어바쳤다는 취지로써 그 절의 개요를 적은 것이다. 원문은 전하지 않고 현존하는 것은 겐엔(延元) 원년([[1336년]]) 무렵에 [[기타바타케 아키이에]](北畠顕家)가 필사한 것과 가레키(嘉暦) 4년([[1329년]])에 후지와라노 스케카타(藤原輔方)가 필사한 사본이 있다. 통설에서는 이 공양원문은 주손지에 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발원문에서 「주손지」라는 이름이 쓰이지 않는다는 점, 문서에 열거된 「3간 4면의 노송나무껍질 기와를 얹은 절집」 등 건축 흔적이 현존하는 주손지 경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 발원문에서 나오는 건물、다리、연못들이 오히려 주손지보다는 옛 모쓰지에 더 가깝다는 점을 들어 이 공양원문은 모쓰지 건립공양에 관한 문서라는 설이 나카가와 세이부(中川成夫)에 의해 제창되었다. 또한 이 문서는 덴지 3년 3월 24일자로 되어 있으나, 덴지 연호는 1월 22일에 다이지(大治)로 바뀌었으므로, 이 공양원문은 연호를 바꾸기 전에 쓰여진 초안으로 추정되고 있다.
 
=== 절의 이름 ===
「주손지」(中尊寺)라는 절의 이름은 덴지 3년([[1126년]])의 경장문서(経蔵文書)에서 처음 보이는데, 문서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때문에 확실한 자료로써는 헤이안 시의 가인(歌人)으로써도 유명한 [[사이교]](西行)가 고지(康治) 연간([[1142년]] - [[1144년]])에 이 땅을 돌아보고 읊은 와카가 실린 《이본산가집》(異本山家集)에서 처음 등장하고 있다고 본다.
 
「주손」이라는 이름은 「오슈의 중심에 안치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주손지의 간쥬(貫主)를 지냈던 다다 아쓰타카(多田厚隆)는 「주손」이라는 단어는 《법화경》 「서품」에 나오는 「인중존」(人中尊)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사람 가운데서 존귀하다」는 의미의 말에서 「사람」을 빼버리면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며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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