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이세황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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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 자결한 것 맞는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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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황제가 전국 순행 도중 병에 걸려 유서를 내렸을 당시 [[황태자]]인 [[부소]]에게 황위를 이으라 적혀 있었으나 시황제가 붕어하고 승상 [[이사 (진나라)|이사]](李斯)와 중거부령인 [[환관]] [[조고]](趙高)는 이를 영호해와 함께 조작하였고 시황제의 운구가 수도 [[함양]](咸陽)으로 돌아간 후에 조작한 유서를 증거 삼아 영호해가 제위에 올랐다.
 
황태자였던 부소는 조작된 시황제의 유언을 보고 겁에 질려 자결하기로 결심했지만 뒤로 미루었다가 조고의유서의 손의내용을 무참히따라 살해된다.자결하였고, 영호해는 재위한 후 부소를 비롯한 진시황제의 공자들을 모조리 죽였으며, 자신은 이사와 조고에게 모든 정치를 맡기고 사치와 향락에 빠진 사이에 조고가 부린 욕심 탓에 이사 승상을 참소하여 고문시킨다. 이사는 호해에게 상소문을 보내었지만 조고가 불태워 버리고 이사는 요참형에 처해지고 조고가 승상이 되나 진은 이미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한 봉기를 시발로 하여 많은 반란이 일어났다. 조고는 점점 역심을 품었다. [[기원전 207년]]에 조고는 군사를 이끌고 함양궁으로 쳐들어와 사치와 향락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영호해를 자결하라 결국 다그친 때 겁먹은 영호해는 조고에게 살려달라 애걸하였으나 영호해는 조고의 조카의 고집에 못이겨 자결한 때 영호해의 나이는 24살이었다.
그의 무덤은 [[시안]]의 한 공원에 진 이세황제릉(秦二世皇帝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