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테만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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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가오 해협 전투(10월 25일): 아부쿠마에는 우시오가 호위함으로 파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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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urigao straight.jpg|right|thumbnail|250px|수리가오 해협 전투]]
 
[[니시무라 쇼지]] 중장이 이끄는 "남방군" 니시무라 함대는 전함 ''야마시로''(山城)를 기함으로 하여 전함 ''후소''(扶桑), 중순양함 ''모가미''(最上), 구축함 ''시구레''(時雨), ''미치시오''(滿潮), ''아사구모''(朝雲), ''야마구모''(山雲)의 일곱 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ref name="Morison1956"/> 그러나 니시무라 함대의 실태는 사실상 다른 함대를 편성하고 남은 배를 긁어모아 만든 함대였다. 후소와''후소''와 야마시로는''야마시로''는 선령이 25년이 넘은 낡은노후 전함들로함정들로 설계상의 결함 탓에 실전 경험이 거의 없이 주로 일본 국내에서 훈련, 교습용으로 쓰이고 있었으며, 모가미는''모가미''는 항공순양함으로 개조는 했으나 성능상 문제로 인해 원 소속인 제7전대가 제8전대와 통폐합될 때 제외되어 제2함대 부속함으로 남아 있었다. 시구레는''시구레''는 소속 부대인 제27구축대의 다른 배들이 모두 격침<ref>''하루사메''(春雨)가 1944년 6월 8일, ''시라쓰유''(白露)가 15일, 그리고 ''사미다레''(五月雨)가 8월 26일에 각각 격침되었다.</ref>되고 혼자 남은 상태였으며, 나머지 세 구축함은 동형함으로 제4구축대라는 단일 부대 소속이었으나 각자 다른 부대를 전전하다가 제각각 편입되어<ref>''야마구모''가 1943년 9월 15일, ''미치시오''가 1944년 3월 31일, ''아사구모''가 1944년 7월 10일에 각각 편입</ref> 한 부대로써의 훈련이나 실전 경험이 거의 없었다.<ref>당시 제4구축대는 이 세 척 외에 카게로급 구축함인 ''노와키''(野分)가 소속되어 있었으나 ''노와키''는 구리타 함대에 배치되었다. 아울러 ''노와키''도 산 베르나르디노 해협에서 미국측의 집중 공격을 받고 격침되어 제4구축대는 레이테 만 전투로 섬멸되었다.</ref>
 
니시무라 함대는 10월 22일 15:00에 구리타 함대의 뒤를 이어 [[브루나이]]를 출발하였으며, [[술루 해]]를 향해 동진하다 [[네그로스 섬]]을 지나 북동쪽으로 항로를 틀어 [[민다나오 해]]에 들어섰다. 이어 [[민다나오 섬]]을 [[우현]]에 두고 북동진하여 [[수리가오 해협]]의 남쪽 입구로 들어섰다. 니시무라 함대는 해협을 통과하여 [[레이테 만]]에서 구리타 함대와 합류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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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무라 함대는 [[수리가오 해협]]에 접근하는 동안 [[제시 올덴도르프]] 해군 중장이 지휘하는 미국 7함대 지원부대의 매복에 걸린다. 7함대 지원부대는 6척의 [[전함]]과 4척의 [[중순양함]], 4척의 [[경순양함]], 28척의 구축함과 39척의 어뢰정으로 구성되어 상당히 충실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전함은 ''웨스트 버지니아''(USS West Virginia, BB-48), ''메릴랜드''(USS Maryland, BB-46), ''미시시피''(USS Mississippi, BB-41), ''테네시''(USS Tennessee, BB-43), ''캘리포니아''(USS California, BB-44), ''펜실베니아''(USS Pennsylvania, BB-38)의 여섯 척으로 미시시피를 제외한 다른 함들은 [[진주만 공격]] 때 침몰하거나 크게 피해를 입었던 배들을 인양하여 수리한 것들로 특히 테네시, 캘리포니아, 웨스트 버지니아의 세 척은 재건조되었다. [[중순양함]]은 기함인 ''루이스빌''(USS Louisville, CA-28)을 위시하여 ''포틀랜드''(USS Portland, CA-33), ''미니애폴리스''(USS Minneapolis, CA-36),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소속인 ''스롭셔''(HMS Shropshire)의 네 척으로 네 척을 모두 합하면 35문의 8인치 함포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경순양함]]은 ''덴버''(USS Denver, CL-58), ''콜롬비아''(USS Columbia, CL-56), ''피닉스''(USS Pheonix, CL-46), ''보이즈''(USS Boise, CL-47)의 네 척으로 모두 합쳐 54문의 6인치 함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니시무라 함대가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뢰밭과 구축함을 뚫고, 8척의 순양함이 보조하는 6척의 전함과 전투를 치루어야 했다.<ref name="Morison1956"/>
 
24일 22:36에 페터 가드 정장의 어뢰정 PT-131이 일본 함대와 접적을 이루었다. 이후 3시간 반동안 PT-131은 북진하는 니시무라 함대와 지속적으로 교전한다. 이 접적 보고는 올덴도르프 함대에게 귀중한 정보가 되었다. 하지만 어뢰정의 어뢰는 전혀 명중하지 않아 니시무라 함대는 다수의 어뢰정과의 교전에서 피해를 입지 않고 진행하였다.<ref name="Morison1956"/>
 
그러나 어뢰정의 매복을 통과한 직후에 양측에서 공격하는 구축함의 어뢰는 피하지 못하게 된다. 25일 03:00 무렵에 일본 전함 두 척 모두 어뢰에 피격된다. 그 중 ''후소''는 기관이 정지되어 낙오했으며 이어 미국 구축함 ''멜빈''(USS Melvin, DD-680)의 어뢰를 맞고 선체가 두동강 난 뒤 고물쪽은 ''루이스빌''의 포격으로 침몰했고 이물쪽은 카니한 섬 근처에서 가라앉았다.<ref name="Morison1956"/> 그러나 ''후소''의 침몰이 전적으로 어뢰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당시 일본 제국 해군이 사용하던, 정제가 충분하지 않은 연료의 유폭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ref>{{citation | first = Anthony P | last = Tully | title = Battle of Surigao Strait | publisher = Bloomington | year = 2009 | ISBN = 978-0-253-35242-2}}.</ref><ref>{{Harvnb|Tully|2009}}.</ref> 또한 ''후소''를 비롯하여 먼저 침몰 또는 항해불능이 된 네 척의 일본측 함정의 생존자들의 운명에 대한 설명도 몇 가지 의견이 있다. 바다에 떨어진 일본 장병들이 미국측 함정의 구조를 거부하였다거나, 주변 섬에 상륙한 승무원들이 필리핀 원주민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또 다른표류하기 일본시작한 함정에''아사구모''가 구조된나머지 승무원들이 해당침몰선의 함정의생존자들을 침몰로구조했으나 ''아사구모''도 침몰하여 전부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니시무라 함대의 네 구축함은 단종진의[[단종진]]의 진형을 형성하던 중 어뢰 공격을 받았다. ''야마구모''가 미국 구축함 ''맥덜무트''(USS McDermut, DD-677)가 쏜 어뢰를 맞고 03:11 경에 침몰하여 니시무라 함대의 첫 침몰함이 되었으며, ''미치시오''는 왼쪽에 어뢰를 맞고 항해불능 상태에 빠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구축함 ''허친스''(USS Hutchins, DD-476)가 발사한 어뢰를 맞고 03:23 경에 격침되었다. ''아사구모''는 뱃머리가 크게 손상되어 표류하게 되었고 ''시구레''만이 어뢰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한편 ''야마시로''는 계속 항해가 가능하여 니시무라 중장은 03:40 경 '''ワレ魚雷攻撃ヲ受ク、各艦ハワレヲ顧ミズ前進シ、敵ヲ攻撃スベシ'''{{해석|우리는 어뢰공격을 받았다. 각 함은 본함에 신경쓰지 말고 전진하여 적을 공격하라}}라는 지시를 내리고 계속 진격했으나 이 지시가 내려진 시점에서 ''후소''와 ''야마구모'', ''미치시오''가 이미 격침되었고 ''아사구모''가 낙오하여 니시무라 함대는 세 척만이 남아 있었다.
 
03:16에 ''웨스트 버지니아''의 레이더가 ''야마시로''를 42,000야드 거리에서 감지하였으며, 30,000야드 거리에서부터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03:53에 8문의 16인치 주포를 22,800야드 거리에서 발사하여 첫 번째 일제사격이 ''야마시로''에 명중했다. 총 93발을 사격하였으며, 03:55에 ''캘리포니아''와 ''테네시''가 합류하여 각기 63발과 69발의 14인치 함포를 사격하였다. 레이더에 기반한 화기 관제 기술을 운용한 미해군은 전통적인 화기 관제 기술을 운용하던 일본 해군이 반격할 수 없는 사정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에 다른 세 척의 미해군 전함은 레이더 화기 관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적절한 시간에 사격에 함류하지 못하였다. ''메릴렌드''는 다른 함의 사격에 의하여 발생한 물보라를 기준으로 48발의 16인치 함포를 목측 사격하였으며, ''펜실베니아''는 결국 사격하지 못하였다. ''미시시피''는 한 번의 일제사격을 수행할 기회를 얻었으며, 이 사격은 전함이 전투함에 대하여 발사한 마지막 일제사격이었다.<ref name= "Morison1956"/>
 
다른 세 척의 미해군 전함은 레이더 화기 관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적절한 시간에 사격에 함류하지 못하였다. ''메릴렌드''는 다른 함의 사격에 의하여 발생한 물보라를 기준으로 48발의 16인치 함포를 목측 사격하였으며, ''펜실베니아''는 결국 사격하지 못하였다. ''미시시피''는 한 번의 일제사격을 수행할 기회를 얻었으며, 이 사격은 전함이 전투함에 대하여 발사한 마지막 일제사격이었다.<ref name= "Morison1956"/>
 
''야마시로''와 ''모가미''는 미국 전함의 16인치 함포와 14인치 함포에서 발사된 다수의 철갑탄 외에도 미국 구축함의 공격으로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시구레''는 뱃머리를 돌려 퇴각하고자 하였으나 조향력을 잃고 완전 정지하였다. ''야마시로''는 함대 사령관인 니시무라 중장, 함장인 시노다 가쓰키요({{lang|ja|篠田勝清}}) 대령 등과 함께 04:20에 침몰하였으며, ''모가미''와 ''시구레''는 남쪽으로 퇴각하였다.
 
남방군의 후위를 담당하는 시마 함대는 타이완의 마코 해군기지(Mako Guard District)에서 출발하여 도중인 10월 24일 [[술루 해]]에서 미국 측의 공격을 받아 ''와카바''가 격침되고 아홉 척이 되어 니시무라 함대의 후방 35 해리(64 km)에서 수리가오 해협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마 함대의 레이더는 다수의 섬에서 나타나는 난반사에 의하여 거의 무용지물이였으며, 특히 어뢰정과 같은 작은 함정은 거의 탐지하지 못하였다.<ref>Tully (2009), p. 167.</ref> 결국 경순양함 ''아부쿠마''가 미국 어뢰정 PT-137이 쏜 어뢰를 맞고 낙오했다. 여덟 척으로 줄어든 시마 함대는 퇴각중인 니시무라 함대의 잔존 병력과 마주친다. 전함 ''후소''의 두동강난 잔해를 본 시마 중장은 니시무라 함대에 소속된 두 전함이 모두 침몰한 것으로 판단하고 함대에 후퇴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후퇴 과정에서 함대 기함인 중순양함 ''나치''가 8노트의 저속으로 퇴각중이던 니시무라 함대의 중순양함 ''모가미''를 정지해 있는 것으로 오인, 접근하다 충돌하여 ''모가미''의 조타실이 침수된다. 시마 중장은 구축함낙오한 ''아케보노아부쿠마'' 호위함으로크게 하여손상된 ''모가미''에게 구축함 ''우시오''와 구축함 ''아케보노''를 각각 호위함으로 파견하여 퇴각시키려 했으나 미국측의 공습을 받아 ''모가미''는 최종적으로 생존 승무원을 ''아케보노''로 옮겨태우고 자침시키기에 이른다이르고, ''아부쿠마'' 역시 미국측의 공격으로 격침되었다. 한편 뱃머리 부분이 손상되어 표류하던 ''아사구모''는 ''모가미''와 ''시구레''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쳐져 있다가 미국측 공격으로 침몰했다. 이로써 니시무라 함대 소속 일곱 척의 전투함 중 ''시구레''만이 살아남아 수리가오 해협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ref>''시구레''는 "呉の雪風、佐世保の時雨"{{해석|구레의 유키카제, 사세보의 시구레}}라고 칭해질 정도로 구레 진수부 소속의 구축함 ''유키카제''와 함께 전투에서의 생존률이 높은 배였다. 그러나 이 ''시구레''도 약 3개월 뒤인 1945년 1월 24일, 말레이반도 근처에서 미 해군 잠수함 ''블랙핀''(USS Blackfin, SS-322)에게 격침되어 37명의 전사자가 발생한다.</ref> 한편 시마 함대의 전투함은 열 척 중 24일 격침된 ''와카바'', 25일 낙오 후 26일 침몰한격침된 ''아부쿠마''를 제외한 여덟 척이 수리가오 해협 전투에서 살아남았으나, 이후에 레이테만에서 대부분 격침된다.<ref name="Morison1956"/><ref name="Howard1999"/>
 
수리가오 해협 전투는 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쟁에서 이루어진 두 번의 '전함 대 전함' 전투 중 하나이며,<ref>다른 하나는 과다카날 전역 중에 이루어진 [[과다카날 해전]]</ref> 역사상 마지막 '전함 대 전함' 전투이다. 또한 역사상 마지막으로 ''[[정자전법]](Crossing the T)''이 사용된 전투였다. 그러나 수리가오 해협 전투에서 정자전법이 사용된 시점은 이미 일본군 함대가 세척의세 척의 전투함만 남아있는 약화된 상태였으므로, 전투의 전과에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ref name="Morison1956"/><ref name="Howard1999"/>
 
== 사마르 해전 10월 2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