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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요숭은 현종에게 10개의 건의를 올렸다. 그 건의란 무후 시절의 가혹한 형벌과 법령을 폐지하고, 변방에서의 전쟁을 중지해 병사들을 쉬게 할 것, 법을 공평하게 집행하고 황친과 백성을 모두 일시동인(一視同仁)으로 대할 것, 환관에게 정치를 맡기지 말 것, 잡다하고 불필요한 세금을 줄이거나 없앨 것, 황족 또는 외척이 대성(臺省)의 관리로 임명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외척의 정치 관여를 제한할 것, 천자가 예를 갖추어 현명한 자를 맞이하고 겸허하게 간언을 받아들일 것, 도관이나 절을 더 짓지 말고 궁전의 건축도 줄일 것, 등이었다. 요숭은 또한 승려를 가장한 자 12,000여 명을 환속시켰다.
그러나 [[716년]]에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던 휘하 막료 조매(趙誨)를 옹호하다 현종의 뜻을 거슬렸고 이를 계기로 재상직을 사임하였다. 재상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낙양(洛陽) 자혜방(慈惠坊)의 자신의 집에서 근신하였고, 그 뒤로도 현종은 늘 사람을 시켜 국사에 대한 것을 요숭에게 자문하였다고 한다.
 
[[721년]] 9월 정미(3일)에 사망하였다. 향년 71세. 묘소는 허난(河南) 이천 현(伊川县)의 팽파향(彭婆鄕) 허영촌(许营村) 북쪽에 있다.
 
== 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