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니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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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년]]에 당시 [[무인도]]였던 이 섬을 [[포르투갈]]인이 발견하고, [[1642년]] [[프랑스]] [[루이 13세]]가 부르봉 섬(île Bourbon)으로 명명했지만, [[부르봉 왕가|부르봉 왕정]]을 타도한 [[프랑스 혁명]]에 의해 레위니옹 섬(LaRéunion)으로 개명하였다. [[1806년]]에 황제 [[나폴레옹]]에 아첨하는 프랑스 제독에 의해 보나파르트 섬이라고 개칭되었다가, [[나폴레옹 전쟁]] 후 영국이 점령하였고(1810년 -1815년) 부르봉 섬으로 되돌렸다. 그러나,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2월 혁명]]으로 [[7월 왕정]]이 붕괴되면서 다시 레위니옹 섬으로 개칭하였다.
 
[[17세기]] 중반부터 [[프랑스 동인도 회사]]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선박들의 중간 기착지를 세우면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노예들을 수입해 커피·설탕 농장에서 일을 시켰으며, [[1848년]]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인도]]·[[중국]]·[[아프리카]]에서 계약노동자들을 데리고 왔다. [[1869년]]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하여 중계항으로서의 역할은 쇠퇴하였다.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다가 [[1946년]]에 프랑스 해외주가 되었다. [[1973년]]에 [[마다가스카르]]에서 프랑스 군대 병력이 철수해 들어오면서 [[인도양]] 주둔 프랑스군 본부가 들어섰다. [[2003년]]에 프랑스의 해외 [[해외 레지옹]]이 되었다.
 
[[프랑스]]는 [[1963년]]부터 [[1982년]]까지 당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레위니옹에서 아이들을 데려와 본토 지방의 인구 감소분을 메운다는 발상으로 해외영토 이민개발국(BUMIDOM) 주도 아래 레위니옹 어린이 총 1,615명을 프랑스 시골로 이주시켜 중산층 가정의 하인으로 쓰거나 농장에서 일을 시키는 국가 범죄를 저질렀다.<ref>[http://media.daum.net/society/welfare/newsview?newsid=20140217204206301 佛 과거사 반성하나..'도둑맞은 아이들' 논의] 연합뉴스, 2014.2.17</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