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4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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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박정희 정부는 [[미군 위안부]]의 성병 예방책을 강구하고 교양을 강화했다.<ref name="국민TV20131106">[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2101 “박정희도 ‘미군 위안부’ 관리”…‘친필 자료’ 공개유승희 “‘기지촌 여성 무리한 감금치료로 사망자 상당’ 진술도”]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국민TV]] 2013.11.06</ref><ref name="로이터200140711">[http://www.reuters.com/article/2014/07/11/us-southkorea-usa-military-idUSKBN0FG0VV20140711 Former Korean 'comfort women' for U.S. troops sue own government] [[로이터]] Jul 11, 2014</ref><ref name="프라임경제20131106">[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0509 2013 국감 박정희 정부, 미군 위안부 직접 관리 유승희 의원, 성병 걸린 여성 페니실린 과다투여 사망사례 발견] [[프라임경제]] 2013.11.06</ref><ref name="한겨레2120111128제887호">[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0838.html 대한민국 정부가 포주였다] [[한겨레|한겨레21]] 2011.11.28 제887호</ref>
 
===일본과의 관계===
[[1970년]] 6월에는 제주도 남쪽 8만km²를 제7광구로 정하고 한국령으로 공식 선포했다. 하지만 1972년 일본이 “한일간의 중간선에서 일본 쪽으로 넘어온 부분은 양국이 50%씩 지분을 갖고 공동개발하자”고 제의했고 한국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1974년 한일대륙붕 협정이 맺어진다. 일본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제주도]]와 [[중국 대륙]]에 붙어있는 7광구의 해저지형 때문이었다. 일본과 7광구는 깊이가 8000m에 이르는 ‘오키나와 해구’가 갈라놓고 있다. 당시까지 지배적 이론이었던 자연연장설로 볼 때 일본이 결코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1972년 당시 정설이었던 자연연장설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유리한 처지였으나, 박정희 정권의 공동개발 합의로 유리한 처지가 부각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정권이 이 사실을 알고 합의를 맺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일본은 공동개발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계속 지연시키고 있다. 계속 지연시키면 2028년 대륙붕 협정이 만료하는 날 자연연장설 대신 UN의 새 해양법이 적용되어서 일본에 유리하게 된다는 시각이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259832</ref>
 
=== 아시아·태평양과의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