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4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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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태평양과의 관계 ===
대중국 관계는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과 차이 없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적대시하고 [[중화민국]]과의 관계를 유지하였다. {{출처|박정희는 [[타이베이 시]]를 방문하여 ‘자유의 파도’ 발언을 하였다}}. [[중화민국]]의 [[중화민국의 총통|총통]] [[장제스]]가 서거하자 [[김종필]] 명의로 애도를 표시하기도 했다. 물론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 개선을 아주 등한시하지는 않았는데 [[중국 공산당]] 측이 호응하지 않아서 무위에 그쳤다<ref>[[저우언라이]] 국무원총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우호적이었고 [[대한민국]]에 적대적인 성격이었다. 이는 당시 중공의 대부분 지도부들도 마찬가지.</ref>.
 
특히 1970년도 초부터 동북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아시아 태평양 이사회]]의 성격을 전환시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국제적인 상황은 다른 분야의 외교정책에도 계속적인 변화를 강요했다.<ref name="글로벌 한국의 외교 자아의식과 시련">《[[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정치/한국의 정치/한국의 외교/한국의 외교#자아의식과 시련의 시기(1961∼80년)|자아의식과 시련의 시기(1961∼80년)]]〉</ref> 그런데 1975년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 이후 태평양 지역의 외교 상황은 급격히 변모하여 많은 국가들이 중립화 경향을 표방하게 되었다. 여기에다 한 때, 태평양의 국가들간에는 노동당 정권이 들어서서 남북한과의 등거리 외교를 추구하던 적도 있었다. 한국은 이런 국가들과도 적극 외교관계를 유지·강화하면서 안보외교의 성과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인도차이나 사태 이후 동남아 지역에서의 공산화는 한국 외교에 달갑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ref name="글로벌 한국의 외교 태평양 서설">《[[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정치/한국의 정치/한국의 외교/한국과 태평양지역 제국의 관계#한국과 태평양지역 제국의 관계〔서설〕|한국과 태평양지역 제국의 관계〔서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