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아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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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과정 ==
[[파일:Pavia campaign (1524-25).png|thumb|left|프랑스군의 진격 상황]]
프랑스는 [[비코가 전투]]의 패배로 롬바르디아를 상실했다. 프랑수아 1세는 보니베의 영주 [[기욤 구피에]]에게 탈환을 명령했으나 [[세지아 전투]]에서 황제군에게 패배했다. 황제군 사령관 [[샤를 드 란누아]]는 [[페르난도 다발로스]], ([[페스카라]]의 후작]]), 부르봉 공(公) 샤를 3세에게 명령해 프로방스 지방을 공격하게 했으나 [[마르세유 공방전]]에서 시간을 허비해 프랑스군이 구원해 오자 퇴각했다.
 
[[1524년]] 10월 중순 프랑수아 1세는 4만 병력을 이끌고 이탈리아를 침공해 밀라노로 진격했다. 프랑스군은 황제군을 전장으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샤를 드 란누아는 밀라노를 포기하고 [[10월 26일]] 롬바르디아의 도시 로디로 후퇴했다. 밀라노를 트레모아 가문의 루이2세에게 맡기고 프랑수아 1세는 파비아로 진격했다. 파비아에는 [[안토니오 데 레이바]]가 지휘하는 황제군 9천명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용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