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규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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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관점 ==
혹자는 [[왕무|혜종]]을 보필하라는 [[고려 태조|태조]]의 유지를 받든 왕규는 군사적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오히려 [[왕무|혜종]]과 [[박술희]]의 보호를 받는 존재였으며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대광(大匡)이였으며, 그의 손자인 [[광주원군]]은 왕위 계승 서열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왕규는 반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고 본다. 오히려 이 사건을 왕위를 노린 [[고려 정종 (3대)|정종]]과 [[고려 광종|광종]]의 음모로 보고 “왕규의 난”이 아닌 “[[왕식렴]]의 난”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ref>한권으로 읽는 고려실록 - 박영규</ref>
 
== 함께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