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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월국]](기원전 203년부터 기원전 111년)의 3대 군주인 명왕(明王: 기원전 122년 ~ 기원전 115년)의 두 적배가 후(后)로 봉작됐다. 이에 중국의 사서에는 왕후라 표기한다.<ref>《漢書 卷九十五 西南夷两粤朝鮮傳第六十五》</ref>
* [[응오 왕조]](吳: 939~967)의 개국조인 전오왕(前吳王) [[응오꾸옌]]의 적배가 왕후가 되었다.
* [[딘 왕조|딘 황조]](丁: 968–980)가 제국을 칭하게 됨으로써 이때부터 [[후 레 왕조|후 레 시대]]의 [[찐 주]] 왕조(鄭主: 1545~1787)가 들어설 때까지 베트남의 황제의 적배는 황후로 봉작됐다. 찐 주에선주(정씨 왕조)에선 전통대로 독립국 황제의천자의 묘호인 조(祖)를 썼지만쓰긴 칭왕을했으나 하여명을 왕의배후로 베트남을 정벌하여 군주로 등극한 왕조였던 만큼 명의 제후국 입장을 취하였기에 정배를 독립국 천자의 정배인 후(后)가 아닌 제후의 정배인 왕비로 삼았다. [[떠이선 왕조|떠이선 황조]](西山朝: 1778년 ~ 1802년)의 부춘조정(富春朝廷: 1788~1082) 때 이르러 다시 칭제(稱帝)하며독립국 입장을 회복하며 황제의 적배를 황후로 삼았다.
* [[응우옌 왕조]](家阮, 越南: 1558년 ~ 1777년, 1802년 ~ 1945년)에서도 내부적으로독립 칭제를제국의 하였으나형태를 취하였으나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한 [[청나라]]의 압박 아래 대외적으론 제후국의 입장을 취하여 칭왕을 하였다. 이에 제왕의 적배는 비(妃)로 삼았다가 사후에 후(后)로 추증하는 형식을 택하였으며, 이 또한 내부적으론 황후로 추상했으나 대외적으론 왕후라 하였다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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