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공원 (대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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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공원 자리는 본래 [[달성 서씨]]의 세거지(世居地)였는데 세종대왕 때 문중에서 토지를 국가에 헌납하였다. 세종대왕이 이를 포상하려 했지만 ‘서침’은 그 대신 국가에서 서민의 환곡을 탕감해줄 것을 건의하였고, 이에 따라 대구의 상환모곡은 백석당 오승씩 감면케 되었으며 조선 말까지 그 특례가 존속되었다. 대구 부민은 이와같은 '서침'을 숭모하여 1665년 대구 구암서원에 봉향하였다. 한편 세종대왕은 회화나무를 심어 서침의 마음을 기리게 했는데 현재 달성공원 내에 있는 '서침나무'가 그 나무로 알려져 있다.
 
달성공원 자리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토성으로 달불성이 있었다. 선조 29년(1596)에 석축으로 개축하고 상주에 있던 경상감영을 현재의 경상감영공원 자리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곳에 두기도 했다. 1905년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달성공원 안에 대구신사(大邱神社)가 세워지기도 했다. 일본에서 발간한 《일본동맹통신사》에는 대구신사의 건립에 조선인 [[김용주 (1905년)|김용주]](창씨명 가네다 류슈)가 2천 원을 기부하였다고 되어 있다. 1963년 사적 제62호로 지정되었다. 이어 1965년 2월 달성공원 종합조성계획을 확정한 후 1969년 공원으로 탈바꿈시켰고, 1970년 5월 달성공원 종합문화관, [[동물원]] 조성을 완료하고, 공원 내에 이상화 시비, 관풍루, [[천도교]] 최제우 동상을 안치하였다. [[대구 도시철도 3호선]] [[달성공원역]]에 내려서 조금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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