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수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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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은 진대덕(陳大德)을 고구려에 보내 첩보 활동을 명령하였다. 이처럼 당나라의 침략 의도가 분명해졌음에도 느슨한 태도를 보이는 영류왕의 태도와 그의 지나친 친당 정책에 반발한 [[연개소문]](淵蓋蘇文)은 영류왕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자, 영류왕을 시해한 뒤 [[고구려 보장왕|보장왕]]을 옹립하였다. 연개소문은 대당강경책을 주장해 고구려와 당 사이의 관계는 다시 험악해졌고, 결국 고구려-수 전쟁이 끝난 지 30여 년 만에 다시 [[고구려-당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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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자료집|조선상고사/제10편}}
* [[고구려-수·당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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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614년]]
[[분류:고구려의 전쟁]]
[[분류:고구려와 중화왕조의중국 왕조의 전쟁]]
[[분류:수나라의 전쟁]]
[[분류:여수전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