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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화 ==
* 《용재총화》에는, 변계량의 인색한 성품에 대한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과일을 먹을 때마다 몇 개를 쪼갰는지 그 수를 기록하였으며, 집에 손님이 찾아와 술을 마실 때도 손님이 몇 잔을 마셨는지를 세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술병을 가만히 봉해버렸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 불쾌함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찍 일어나는 손님도 많았다고 한다.
* 뛰어난 문장으로 세종의 명을 받아 [[흥덕사]](興德寺)에서 《국조보감》(國朝寶鑑)을 엮는 임무를 맡아 머무르는 동안, 세종이 궁중의 귀한 음식을 하사하였고, 조정의 고관도 동료들 또한 자주 변계량에게 술와 음식을 보내 위로하였는데, 변계량은 그 음식과 술을 모두 먹지 않고 방에다 저장해 둘 뿐, 따르던 종이나 시자 누구에게도 한 입 나눠주는 일이 없었고 급기야 날이 오래되어 음식들이 구더기를 까고 악취가 진동할 정도로 썩으면 그냥 언덕에 갖다 버릴 뿐이었다.
* 한 번은 휴가를 얻어 시골의 별장에서 지었던 시를 서울로 올라가면 왕에게 바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사 김구경(金久冏)이 듣고 자신이 예전에 지어두었던 시와 비교하면서 "춘정(변계량)이라는 자는 시를 모른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중략) 그의 문장은 기(氣)가 아주 졸렬한데 그런 시를 갖다 바치면 이는 임금을 기망하는 짓이다"라고 비웃었고, 변계량도 옛 시를 인용하며 "구경은 자신도 시를 모르면서 내가 지은 것을 비웃는다"고 반박했고, 《용재총화》의 저자는 김구경은 문사로써 자신의 재주를 믿고 남을 멸시하며 후배로써 선배를 경멸하였으니 변계량 또한 마음에 아니꼽게 여겨 서로 싫어하고 갈라져서, 평생 김구경은 현달한 관직을 얻지 못했다고 평한다. 또한 변계량이 지은 《낙천정기》를 보고 김구경은 "이 글에서 성리(性理)를 논한 부분은 《중용》의 서(序)와 흡사하다."고 평하였다고 한다.
 
== 관련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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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 눈물]]》([[KBS]], [[1996년]]~[[1998년]], 배우:[[김종결]])
 
== 주석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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