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서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문단 이름 변경 (주석 → 각주)
9번째 줄:
삼척에 있던 [[심척군|실직국]]을 중심으로 강릉 일대는 [[예맥]]이 정주하고 있었고
그 이남에는 [[진한]]의 [[파조국]]과 [[음즙벌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서기 50~102년 사이에 실직국이 급속히 영역을 확장해 진한의 음즙벌국과 분쟁을 벌이다
오히려 [[신라]]에 대패해 신라 내의 자치국이 되었고 신라는 이를 발판으로 동해안일대를
자신의 세력권 하에 넣었다. 이 지역은 서기 [[481년]]에 고구려의 남침으로 일시 고구려의
지배하에 들어갔던 것을 제외하고는 내내 신라의 영역에 속했다.
 
[[505년]] 지증왕 6년에 고구려로부터 동해안을 탈환한 신라는 이전 실직국을 치소로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했다. 실직주는 [[진흥왕]]에 의해 대거 북쪽으로의 진출이
이루어짐에 따라 얼마 안가 하슬라주(何瑟羅州)에 이어,556년 [[안변]]을 치소로 비열홀주
(比烈忽州), 그로부터 12년 후인 [[568년]] 달홀주(達忽州)로 변화했다.
하슬라라 불리는 지금의 [[강릉]]지역에는 [[639년]] [[선덕여왕]] 8년에 북소경(北小京)이
설치되었다. 북소경은 [[658년]] [[태종 무열왕]] 5년 통일전쟁을 앞에 두고 폐지되고
하슬라주,또는 하서주로 돌아갔다.
 
25번째 줄:
=== 하서주 ===
 
통일 전쟁과 [[나당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삼한 통일을 완수한 신라는 [[685년]] [[신문왕]] 5년에 전국의 행정체제를 9주
5소경으로 정비하기 시작했다.
757년(경덕왕 16) 12월 전국의 행정구역명칭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지자 명주(溟州)로 개칭되었으나 그 후에도 하서주의 명칭은
계속 쓰였다. 신라군은 이화혜정(伊火兮停)과 하서주서(河西州誓)·청흑(靑黑)·청적(靑赤)의 만보당(萬步幢)이 주류했다.
 
=== 북해통(北海通) ===
36번째 줄:
한편 신라쪽에서는 [[소지마립간]]때 전국의 교통망을 정비하며 동해안에도 도로망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신라시대에 이르면 [[동해통]]이라는 국제도로망으로 재 정비되었다.
경주의 간문역(艮門驛)에서 출발한 북해통은 안강을 거쳐 [[흥해]]에 이른 다음 동해안을 따라
천정군에서 신라도와 접속이 이루어졌다. 북해통과 신라도를 주요 교통로로 신라와 발해는 사신 왕래등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764년]]에는 당나라 사신 한조채(韓朝彩)가 두 도로를 이용해 발해에서 직접 신라로 오기도 했다.
 
=== 명주국(溟州國) ===
44번째 줄:
그의 후손인 [[강릉 김씨]]일족은 그 지역의 영주가 되었다. 김주원의 아들인 [[김헌창]]은
자신의 아버지의 왕위승계 실패를 평생 한으로 삼다가 결국 [[김헌창의 난]]을 일으켜 패사하였고 이후
명주국과 신라 중앙정부는 소원한 관계가 이어져 명주국은 반 독립국 상태로 이어졌다.
그의 후손인 김순식은 [[922년]]([[고려 태조]] 5년) 고려에 귀순하여 왕건으로부터 왕씨 성을
하사받고 대광(大匡)에 임명됨으로써 그의 후손주에 일각은 [[강릉 왕씨]]를 칭하고 강력한 호족세력이 되었다.
 
51번째 줄:
하서주에는 9개 군 25개 현이 소속되어 있었다. 한편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명주 소속 군현의 옛 지명을 대부분 고구려 시기의 지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대부분이 원래 신라영토였음에도 원 지명은 고구려 식이다.
 
{| class="wikitable"
|+
'''하서주의 소속 군현'''
136번째 줄:
* [[신라의 행정 구역]]
 
== 주석각주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