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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 넘어옴|씨랜드|화재 사고|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
{{나라 정보
|나라이름=실랜드시랜드 공국
|현지이름=실랜드시랜드 공국<br />{{lang|en|The Principality of Sealand}}
|다른표기=
|대표이미지=Sealand fortress.jpg|150px
|대표이미지_설명=실랜드시랜드 공국이 위치한 [[러프 요새]]의 전경
|국기_그림=Flag of Sealand.svg
|문장_그림=Sealand Coat of Arms.svg
|지도_그림=Map of Sealand with territorial waters.png|150px
|지도_그림_설명=실랜드시랜드 공국의 위치
|나라_표어={{llang|la|E mare libertas}}
|나라_표어_설명=바다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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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어=
|정부형태=[[공작 (작위)|공작]]이 다스리는 군주제
|지도자_칭호=[[실랜드시랜드 공국의 군주|공작]]
|지도자_이름=[[마이클 베이츠|실랜드시랜드 공국의 마이클 1세]]
|정부수립=[[러프 요새]] 점거
|정부수립1=독립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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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수립일1=[[1967년]] [[9월 2일]]
|면적=550 m²
|통화=[[실랜드시랜드 달러]]
|통화기호=
|단위=
}}
'''실랜드시랜드 공국'''({{llang|en|Principality of Sealand}})은 [[영국]] [[서퍽 주]] 근해에 있는 [[마이크로네이션]]이다. [[1967년]]에 건국한 이래 스스로 [[공국]]임을 선언하고 있으며 [[공작 (작위)|공작]]이 통치한다.
 
== 역사 ==
[[영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해안방위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하여 4개의 [[해상 요새]]와 다수의 [[해상 벙커]]를 건설하였다. 실랜드시랜드 공국이 영토로 삼고있는 [[러프 요새]]는 원래 영국에서 10k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한 해상 요새로, [[1942년]]에 건설되었다. 전시중에는 150~300명의 병력이 상시 거주하고 있었으나, 전쟁 종료 이후에 요새는 방치되었다.
 
그러던 것이 [[1967년]] [[9월 2일]] 원래 [[영국 육군]] 소령이었으며 해적방송의 운영자였던 [[패디 로이 베이츠]]가 당시 [[영국]]의 영해 밖에 존재하고 있던 이 요새에 독립선언을 발표하여 이 요새를 실랜드라고시랜드라고 이름짓고 자신도 로이 1세라고 명명하였다. 영국은 재판을 걸었으나, [[1968년]] [[11월 25일]]에 나온 판결에 의하면, 실랜드시랜드 공국이 위치한 [[러프 요새]]는 영국의 영해 밖에 존재하며, 주변국들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영국의 사법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실랜드를시랜드를 독립국가로 인정한 나라나 정부는 없으며, 국제적으로 실랜드시랜드 공국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이 국가는 여권, 화폐는 물론 축구 국가대표팀도 있다. 베이츠가 실랜드시랜드 공국을 선포한 이듬해인 [[1968년]] 영국 해군이 실랜드에시랜드에 접근해 강제 퇴거를 시도했으나 베이츠가 경고 사격을 하는 등 강력히 대응하여 그냥 돌아갔다.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5&aid=0000005607& 팝뉴스 2007년 1월 8일자 10명 거주 가능한‘세계 최소 국가’“1200억 원에 팝니다”</ref>
 
[[1967년]]에 [[패디 로이 베이츠]]는 실랜드시랜드 공국을 독립국으로 선언하고 자신을 공작이라 칭하여 자신의 가족들과 실랜드시랜드 공국의 주민을 자처한 20여명의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러프 요새]]의 안에는 로이 1세의 가족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1년 후에 러프 요새의 근처를 지나던 [[영국 해군]]의 함정이 요새의 해상 벙커에서 많은 주민들을 발견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위협을 느낀, [[패디 로이 베이츠|로이 1세]]의 아들인 마이클 베이츠가 영국 해군의 함정에 총격을 가하였다. 당황한 [[영국 해군]]은 군사를 모아 실랜드시랜드 공국이 있는 [[러프 요새]]에 진입하고 강제로 로이 베이츠와 그의 가족 및 실랜드시랜드 공국의 주민들을 강제 퇴거시키려고 하였으나, 이에 대한 [[영국]] 법원은 '실랜드는시랜드는 영국 영해 밖 공해상에 있기 때문에 영국의 사법권이 미칠 수 없다'<ref>당시 영해의 기준은 육지로부터 3해리까지를 영해로 인정하였으므로, 실랜드시랜드 공국의 건설 당시에는 [[러프 요새]]에 영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는 육지로부터 12해리까지를 영해로 보므로, 현재는 엄연히 [[영국]]의 사법권 내에 있게 된다.</ref>라고 판결을 내리면서 [[영국 해군]]에게 회항하도록 하여 일단락내렸다. 이렇게 실랜드시랜드 공국은 끈질기게 독립을 지켜내었다.
 
=== 외자의 난 ===
'''외자의 난'''(外資의 亂)은 [[1978년]]에 실랜드시랜드 공국에서 일어난 유일한 독립 운동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실랜드시랜드 공국은 독립을 원한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 배경 ====
[[1978년]]에 실랜드시랜드 공국에 한 독일 사업가가 찾아왔다. 돈이 많은 그는 여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였고, 실랜드시랜드 섬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기 위하여 당시 실랜드의시랜드의 공작이었던 [[패디 로이 베이츠|로이 1세]]가 잠시 요새를 떠난 사이 그의 아들인 마이클 베이츠를 포로로 잡고 무단으로 실랜드시랜드 안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점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로이 1세와 당시 실랜드시랜드 공국의 주민으로 등록되어 있던 20명의 사람들이 총출동하여 그들을 진압하고, 그 사업가를 포로로 삼아 [[독일]] 정부와 포로협상을 벌였다. 결국 사업가는 떠나고 실랜드는시랜드는 독립을 지키게 되었다. 실랜드시랜드 공국에서는 이 사건을 '외자(外資)의 난'이라고 부르고 있고 이 사건은 실랜드시랜드 공국의 유일한 독립 운동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파일:Sealandafterfire2.JPG|300px|섬네일|default|2006년 화재가 난지 2달 후의 실랜드시랜드 공국]]
 
=== 현재 상황 ===
[[1999년]] 로이 1세의 양위로 아들 마이클이 2대 공작이 되었다. 한때는 실랜드시랜드 공국에서 발행한 여권이 위조 되어 국제경찰이 범인을 찾고 있으나 아시아를 비롯 전 세계에서 마약밀매 등에 사용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실랜드시랜드 공국의 여권이 범죄에 인기인 것은 영국인들도 실랜드의시랜드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위조해도 들킬 가능성이 적다는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2006년]] [[6월 23일]], 노후화된 발전기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당시 상주하고 있던 단 한 명의 병사는 [[영국 공군]]에 의해 구조되었다. 화재 후 국토는 폐허가 되었다. 그 후 실랜드의시랜드의 구조물을 재건하는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2006년]] [[11월]]에 완료되었다. 그러나 이 공사로 인해 재정난에 시달리던 2대 공작인 마이클 베이츠는 [[2007년]] 1월에 실랜드시랜드 공국의 공작위와 영토를 통째로 매물로 내놓았다. 이 같은 사실이 잠시 큰 화제가 되었고, 이에 한 [[일본인]]이 실랜드시랜드 공국을 매입할 의사를 밝혔으나, 교통 불편 등의 이유로 매입 의사를 철회하였다.
 
== 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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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 고리 ==
* [http://www.sealandgov.org/ 실랜드시랜드 공국 웹사이트]
* [http://www.churchandeast.com/ 실랜드시랜드 공국의 재건을 진행한 처치 앤 이스트 사 웹사이트]
 
[[분류:1967년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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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마이크로네이션]]
[[분류:인공섬]]
[[분류:실랜드시랜드 공국| ]]
[[분류:영국의 마이크로네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