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함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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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고 가장 축복받은 함대'''({{llang|es|Grande y Felicísima Armada|그란데 이 펠리키시마 아르마다}}), 속칭 '''무적함대'''(無敵艦隊, {{llang|es|Armada Invencible|아르마다 인벤시블레}})는 [[1588년]] [[메디나 시도니아]](Medina Sidonia) [[공작 (작위)|공작]]의 지휘하에 [[영국]]을 상대로 출항했던 [[에스파냐]]의 함대이다. 흔히 [[잉글랜드-스페인 전쟁]]에서 잉글랜드의 함대에 분쇄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잉글랜드 함대와의 교전에 의해 잃은 배는 3척에 불과하다. 나머지 배들은 태풍으로 인한 비전투 손실로 침몰하였다.
 
무적함대는 [[잉글랜드의 메리 1세|메리 1세]] 여왕의 남편이었던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펠리페 2세]] 왕이 파병하였다. 파병 목적은 에스파냐령 네덜란드의 일부인 [[네덜란드 공화국]]에 대한 영국의 지원을 억제하고, 신세계에 있는 에스파냐령 영토와 대서양 보물 선단에 대한 영국의 공격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교황 식스토 5세]]는 상륙 보상금 계약(the promise of a subsidy should it make land)을 통해 원정을 지원하였다.<ref>[http://en.wikisource.org/wiki/Catholic_Encyclopedia_(1913)/The_Spanish_Armada The Spanish Armada]</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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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함대는 영국 함대의 공격을 받았지만, 영국 해협으로의 항해를 강행하여 [[프랑스]]와 에스파냐령 네덜란드 사이의 연안 경계 지역인 그레벨링건(Grevelingen) 남해의 넓은 수면에 정박했다. 그곳에서 파르마군과의 연락을 기다리던 도중, 화선(fire ship) 공격을 받아 대열을 잃고 흩어지게 되었으며, 이후 197척에 달하는 영국 함대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뒤이어 벌어진 그레벨링건 전투(Battle of Gravelines)에서도 소수의 함선을 더 잃게 되었으며, 이 결과로 에스파냐는 파르마군과의 집결을 포기하게 된다.
 
무적함대는 비록 뿔뿔이 흩어졌지만 많은 함선이 있었으나, 함선을 재편성하여 남쪽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 남쪽 해안 지역까지 영국 함대의 습격을 받았다. 무적함대는 [[스코틀랜드]] 주위로 항해하여 대서양으로 나간 후 [[아일랜드]]를 지나 에스파냐로의 퇴각을 시도했다. 그러나 도중에 큰 폭풍을 만나 함대의 일부가 손상되었으며, 24척 이상의 배는 아일랜드 북부 및 서부 해안에서 난파되어, 난파된 배의 생존자들은 스코틀랜드로 피난해야만 했다. 무적함대의 초기 보완선(complement of vessels) 중 약 50척은 에스파냐로 돌아오지 못하였고, 펠리페의 22척 왕립 함대는 7척을 잃었으나, 단지 3척만이 적의 공격에 의한 것이었다.
 
이 전투 후에 다음과 같은 비문이 적힌 대형 메달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