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하묘'''(何苗, ? ~ [[189년]])는 [[중국]] [[후한]] 말의말기의 정치가이다관료로, [[자 (이름)|자]]는 '''숙달'''(叔達)<ref>[[도홍경]], 《[[진고 (책)|진고]]》(眞誥) 권14</ref>이다. 본래 성은 주(朱)씨로, [[하진]]의 의붓동생이다.
 
== 행적 ==
[[하진|하진(何進)]]의 동생으로, 본성은 주(朱氏)이며, 아버지의 이름은 불명이다.
[[후한 영제|영제(靈帝)]]의 황후인 [[영사황후|하황후(何皇后)]]와는 아버지가 다른 남매 사이로, 하진(何進)과는 피가 전혀 섞이지 않았다.
 
==혈연관계==
 
삼국지 동탁(董卓)전 주석의 『영웅기(英雄記)』 및 『속한서』 오행지(五行志)에 기록되어 있다.
『영웅기』 및 『속한서』 오행지 이초요(二草妖)의 항에 따르면 하태후의 어머니 무양군(舞陽君)은 주씨(朱氏)와의 사이에 하묘를 낳아, 그 후 하진(何真: 하진(何進) 아버지)의 후처가 되자 하태후를 낳게 된다.
 
한편으로 『속한서』 오행지 일옥자괴의 항에서는, 하황후의 어머니가 다른 오빠가 하진이고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 하묘라고 되어 있으나, 어쨌든 하진과 하묘의 사이에는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는 것이 된다.
 
==생애==
줄 17 ⟶ 6:
이복동생이 영제의 총애를 받고, 황자(皇子)인 [[후한 소제 (13대)|유변(劉辯)]]을 낳아 황후가 되자,
계형과 함께 관료가 되어, 하남윤(河南尹)에 임명되었다.
그 후, 차기장군으로[[거기장군]]으로 누진해 제양후로 봉해졌다.
 
189년, [[후한 영제|영제(靈帝)]]가 붕어해 소제(少帝)가 즉위하자, 환관의 존폐를 둘러싸고, 정치 싸움이 발생했다.
줄 36 ⟶ 25:
 
하묘의 무덤은 상경한 [[동탁|동탁(董卓)]]에 의해 파헤처져 시체가 절단당한 후 길에 버려지는 수모를 겪었다.
 
==각주==
<references/>
 
[[분류:한나라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