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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2 = 연방군의 철십자.
}}
'''철십자'''(鉄十字, {{llang|de|Das Eiserne Kreuz|다스 아이제르네 크로이츠}})는 십자팔의 완곡 변화가 중심에서 십자팔 끝까지 완만하게 이루어지는 흑백의 [[크로스 파테]]로, 과거의 독일 제국군 및 현대 독일 연방군의 상징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 국방군에서는 [[막대 십자]]를 상징으로 사용한 대신 철십자는 서훈용 장식으로 사용했는데, 이를 '''철십자 훈장철십자장'''(鉄十字章)이라이라고 한다.
 
== 역사 ==
[[파일:IK 1813.jpg|thumb|100px|right|1813년형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전쟁으로 구분되어 각기 제정된대로 1813년형, 1870년형, 1914년형, 1939년형 철십자 훈장으로철십자장으로 나뉜다.
 
=== 1813년형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
 
철십자훈장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 [[6개 동맹의 전쟁]]에서 싸운 [[프로이센]] 병사들의 무공을 치하하기 위해 [[1813년]] [[3월 10일]] 브레스라우({{lang|de|Bresla}})<ref> [[슐레지아]] 지방에 위치한 구프러시아의 도시. 현재는 브로츠와프({{llang|pl|Wrocław}}). </ref> 에서 처음 수여되었는데, 이것을 1813년형 철십자 훈장이라고철십자장이라고 하며 최초의 철십자 훈장이다철십자장이다.
 
=== 1870년형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
 
[[파일:IC1870.jpg|100px|thumb|100px|right|1870년형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프로이센]] 왕국의 [[빌헬름 1세]]가 [[보불전쟁]] 기간이었던 [[1870년]] [[7월 16일]] 다시 철십자 훈장을철십자장을 제정해 수여했다. 이때의 훈장을 1870년형 철십자 훈장이라고철십자장이라고 하는데, 1870년에 수여받은 병사들 중에서 [[1895년]]까지 계속 복무한 병사들은 3개 백엽잎에 '25' 가 씌여진 제대군인 25년 근속복무기장을 수여받았다. 이때 대철십자훈장({{lang|de|Großkreuz des Eisernen Kreuzes}})이 제정되어 아우구스트 카를 폰 괴벤({{llang|de|August Karl von Goeben}}), 에드빈 프라이혀 폰 만토이펠({{llang|de|Edwin Freiherr von Manteufell}}), [[헬무트 폰 몰트케 (1800년)|헬무트 폰 몰트케]]({{llang|de|Helmuth von Moltke}}), [[빌헬름 1세]]를 포함해 9명이 수여되었다.
 
=== 1914년형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
 
[[파일:1914IronCross.jpg|thumb|100px|right|1914년형 2급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이후 한동안 독일이 참가한 전쟁이 없으면서 철십자훈장의 수여는 중단되었는데, [[1914년]] [[7월 24일]] [[1차대전]]이 발발되자 [[8월 5일]] [[빌헬름 2세]]가 다시 제정했다. 이때는 [[독일 제국]]의 시기였고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애초 [[프로이센]] 왕국의 훈장이었으나 독일의 총칭적인 훈장으로 대우받았다. 1813년형, 1870년형, 1914년형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다음의 3개의 등급으로 나뉘었다.
 
* 2급 철십자 훈장철십자장({{lang|de|Das Eiserne kreuz 2. klasse}})
* 1급 철십자 훈장철십자장({{lang|de|Das Eiserne kreuz 1. Klasse}})
* 대철십자훈장({{lang|de|Großkreuz des Eisernen Kreuzes}})
 
이 세 훈장의 외양은 동일했지만 착용하는 방식이 달랐다. 1급과 2급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뒤의 핀이나 고정쇠가 달려있어 수여자의 왼쪽 가슴에 거는 형식이었고, 대철십자훈장과 2급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각기 다른 검은색+흰색(이 2색은 [[프로이센]]을 상징하는 색임.) 배합 리본으로 매다는 방식이었다. 대철십자 훈장은대철십자장은 장성 계급에게만 수여하는 훈장이었으며, [[1차대전]] 당시에는 [[빌헬름 2세]], [[파울 폰 힌덴부르크]], [[에리히 루덴도르프]],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llang|de|August von Mackensen}}), 레오폴드 막시밀리안 요제프 마리아 아르눌프({{llang|de|Leopold Maximilian Joseph Maria Arnulf}}) 5명이 수여받았다.
 
이 밖에 이 등급보다 비공식적으로 더 높은 훈장으로 금성 대 철십자 훈장철십자장({{lang|en|Star of the Grand Cross of the Iron Cross}}) 이 존재하였다. 이 훈장은 가장 무훈이 뛰어난 장군에게만 수여되는 훈장이었는데, [[1813년]] [[게프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와 [[1918년]] [[파울 폰 힌덴부르크]] 두 명에게만 수여되었고, 각기 블뤼허슈테른({{llang|de|Blücherstern}})과 힌덴부르크슈테른({{llang|de|Hindenburgstern}}) 이라고 불렸다.
 
1급 철십자 훈장과철십자장과 2급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계급에 간주하지 않고 수여되었으며, 2급 철십자 훈장을철십자장을 기존에 수여 받았어야 1급 철십자 훈장을철십자장을 수여받을 자격이 부여되었다. 그러나 [[2차대전]]때와는 달리 같은 직급의 훈장을 두 번 이상 받을 수 있었다. 군사 훈장이 병사의 계급을 기초로 수여되던 다른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 달리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대체적으로 평등하였다. 예를 들어 [[바이에른]]에서는 장교는 다양한 등급의 수훈훈장({{lang|de|Militär-Verdienstorden}})를 수여받을 수 있었던 반면에 사병은 다양한 등급의 군사적인 수훈십자상({{lang|de|Militär-Verdienstkreuz}})만을 수여받을 수 있었고, [[프로이센]]에서도 군 계급에 기초해 수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비록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계급 면에서는 평등하게 수여되었지만 일반 사병보다는 장교와 하사관의 수여 비율이 더 높았다.
 
[[1차대전]] 동안 어림잡아 2급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4백만개, 1급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약 14만 5천개 가량이 수여되었다. 기존 수여자에 대한 [[프로이센]]의 기록문서가 [[2차대전]]에 손실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훈장이 다량으로 수여되면서 명예가 실추된 것은 사실이다. 1914년 철십자훈장의 수여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로 [[1914년]] 2급 철십자 훈장과철십자장과 [[1918년]] 1급 철십자 훈장을철십자장을 수여받았는데, 당시 그의 계급은 상병{{lang|de|Gefreiter}}으로 사병 계급으로 두 개의 훈장을 받은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히틀러는 죽을 때까지 왼쪽 가슴에 훈장을 매달고 다녔으며 이 모습이 히틀러를 촬영한 사진의 표준이 되었다.
 
=== 1939년형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
[[1차대전]]이 끝나면서 중단되었던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수여제도를 다시 부활시킨 것은 [[아돌프 히틀러]]로, [[1939년]] [[9월 1일]] [[2차대전]] 발발일에 제국법령 IS. 1573 호인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재수여 규정({{lang|de|Verordnung über die Erneuerung des Eisernen Kreuzes}})으로 이루어졌다. 이 명령에 의해 새로운 등급이 추가되면서 [[2차대전]] 당시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크게 철십자일반 훈장철십자장, 기사철십자기사십자 훈장철십자장, 대철십자 훈장의대철십자장의 세 개로 구분되었다. 기사철십자기사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기존 [[프로이센]]의 훈장이었던 [[푸르 라 메리트]]({{llang|fr|Pour le Mérite}})를 교체하기 위한 등급이었는데, 이 훈장은 장교에게만 수여되던 훈장이었으므로 [[1차대전]] 때 하사 계급까지 진급했던 히틀러가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던 탓도 있다. 또한 히틀러는 비전투요원의 훈장으로 전장공로훈장([[워 메리트 훈장]])({{lang|de|Kriegsverdienstkreuz}})을 새로 만들었다.
 
2급 철십자철십자장과 훈장과기사십자 기사철십자 훈장의철십자장의 리본도 달라져 검은색+흰색+빨간색 배합의 리본이 사용되었고(이 3색은 [[독일]]을 상징하는 색임.), 1급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핀으로 고정시키는 같은 방식이었다. 또한 독수리와 원형 [[스바스티카]]로 제작된 약장이 주어졌는데, 이것은 [[1차대전]] 당시 1급 철십자 훈장을철십자장을 수여 받은 [[2차대전]] 복무 군인 가운데 재수여될 충분한 자질 혹은 공로가 있는 자에게 1939년형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대신에 수여된 것으로, 주로 영관급 이상의 인물들이 달고 있던 것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 1939년형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반드시 최하 서열인 철십자 2급 훈장부터 한 단계씩 수여 받으면서 그 서열이 상위 단계로 올라가는 것이 규정이었으며, 한 훈장은 [[1차대전]]과는 달리 1번만 수여 받을 수 있었다. 원 훈장이 수여된 다음에는 모조를 몇 개 제작해 일상 복무기간이나 전투기간에 매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군을 위해 헌납하거나 기부, 활동한 민간인에 대해서도 수여가 가능했다.
 
1939년형 철십자 훈장의철십자장의 공식적인 등급 서열은 다음과 같다.
* 2급 철십자 훈장철십자장({{lang|de|Das Eiserne Kreuz 2. Klasse}})
* 1급 철십자 훈장철십자장({{lang|de|das Eiserne Kreuz 1. Klasse}})
* 기사기사십자 철십자 훈장철십자장({{lang|de|Das Ritterkreuz des Eisernen Kreuzes}})
* 백옆(오크나뭇잎)곡엽 기사기사십자 철십자 훈장철십자장({{lang|de|Das Ritterkreuz des Eisernen Kreuzes mit Eichenlaub}})
* 백옆검곡엽검 기사기사십자 철십자 훈장철십자장({{lang|de|Das Ritterkreuz des Eisernen Kreuzes mit Eichenlaub und Schwertern}})
* 다이아몬드곡엽검금강석 백엽검기사십자 기사 철십자 훈장철십자장({{lang|de|Das Ritterkreuz des Eisernen Kreuzes mit Eichenlaub, Schwertern und Brillanten}})
* 황금황금곡엽검금강석 다이아몬드기사십자 백엽검 기사 철십자 훈장철십자장({{lang|de|Das Ritterkreuz des Eisernen Kreuzes mit Goldenen Eichenlaub, Schwertern und Brillanten}})
 
==== 1/2급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
 
[[파일:Iron Cross - 2nd Class.jpg|thumb|100px|right|2급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철십자 2급 훈장의 수여 기준은 '임무에서 한번의 뛰어난 용감한 행동을 한 자' 였고, 1급의 수여 기준은 '2급 철십자 훈장을철십자장을 수여받고 임무에서 3-5가지의 뛰어난 용감한 행동을 한 자' 였다. 2급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리본과 함께 주어지며 리본을 군복의 두 번째 단추에 매달거나, 약장을 매달거나, (정복일 경우) 훈장을 리본과 함께 고정시키는 세 가지 방법이 가능했다. 1급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리본 없이 메달 핀이 있어 왼쪽 가슴에 매달았다.
 
2급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2차대전]] 기간 총 230만명이 수여되었고, 1급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33만명 정도가 수여된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 중 39개의 2급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주로 독일 [[적십자]]에서 활동을 한 여성들에게 수여되었고, 1급 철십자 훈장은철십자장은 두 명의 여성에게 수여되었는데, 각기 [[한나 라이치]]와 엘제 그로스만({{lang|de|Else Grossmann}})이었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 총 병력이 약 1,789만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수여 제도가 엄격했음을 보여준다. 무슬림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제 13 무장친위대 한트샤르({{lang|de|Handschar}}) 제 1 크로아티아 사단 소속 중위({{lang|de|Obersturmführer}}) 였던 하림 말콕({{llang|hr|Halim Malkoć}})에게 [[프랑스]] 빌프랑슈-드-루에르그({{llang|fr|Villefranche-de-Rouergue}}) 의 군 내부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1943년]] [[9월]] 2급 철십자 훈장이철십자장이 수여되었다. 또한 [[핀란드군]] 소속의 두 명의 [[유대인]] 장교였던 군의관 소령 레오 스쿠르닉({{llang|fi|Leo Skurnik}})과 대위 잘로몬 클라스({{llang|fi|Salomon Klass}}), 전시 [[핀란드]] 준군사조직인 여성예비자원단 로타 스뵈르드({{llang|fi|Lotta Svärd}})에게도 철십자 훈장이철십자장이 수여되었으나 모두 받기를 거절했다.
 
==== 기사철십자장기사십자 철십자장 ====
약 8,436 명이 [[기사철십자장기사십자 철십자장]] 계통 훈장을 수여받았다.
 
* 기사철십자장기사십자 철십자장: 기사철십자장은 [[1939년]] [[9월 1일]]의 제국법령 IS. 1573 에 의거해 1939년 9월 30일부터 수여되었다. 종전시까지 총합 약 7,361명이 수여받았는데 이 중 비독일인은 43명으로, 그 중 24명이 [[친위대 (나치)|친위대]]에서 외국 의용군으로 복무한 병사들이었다.
 
* 곡엽기사철십자장곡엽 기사십자 철십자장: 기존 제국 법령에 1조와 4조를 추가시킨 1940년 6월 3일의 제국법령 IS. 849 에 의거해 1940년 7월 19일부터 수여되었다. 기사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위에 떡갈나무 잎 모양의 장식을 달은 것이며, 통산 수여 890명이고 이 중 비독일인은 8명이다.
 
* 곡엽검기사철십자장곡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 1조와 4조가 다시 추가된 1941년 9월 28일 제국법령 IS. 613 에 의거해 수여되었다. 떡갈나무 잎 장식 밑에 두 검을 교차한 장식을 부착한 것이며, [[아돌프 갈란트]]가 최초로 수여되었고, 총 156명(혹은 160명)이 수여받았다. 외국인 중 유일하게 동맹국 일본 해군원수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에게 특별히 이전 단계를 건너뛰어 사후 수여되었다.
 
* 곡엽검곡엽검금강석 다이아몬드 기사철십자장기사십자 철십자장: 동일한 제국법령 IS. 613 에 의거해 수여되었으며, 두 검을 교차한 떡갈나무 입 장식 사이와 두 검에 다이아몬드를 박은 형식이다. [[베르너 뮐더스]]가 최초로 수여 받았고, 총 27명이 수여받았다.
 
* 황금곡엽검황금곡엽검금강석 다이아몬드 기사철십자장기사십자 철십자장: 실질적으로 가장 높은 서열의 훈장으로, 다이아몬드를 박은 두 검을 교차한 떡갈나무 입 장식에 순금을 덮은 것이다. [[1944년]] [[12월 29일]]에 1조, 2조, 4조가 추가된 제국법령 1945 IS. 11 에 의거해 원래는 전사자 12명만을 선정해 수여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슈투카]] 에이스였던 공군대령 [[한스 울리히 루델]] 1명만이 [[1945년]] [[1월 1일]]에 생존 장병으로서 수여받았다.
 
==== 대 철십자 훈장대철십자장 ====
 
1939년형 대철십자 훈장의대철십자장의 수여자는 [[1940년]] [[7월 19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 서부유럽 침공작전인 [[황색 작전]] 중 [[루프트바페]] 지휘 공로로 수여된 [[헤르만 괴링]]이 유일하며, 사실상 [[2차대전]] 당시에는 형식상으로만 제정되어 괴링만을 위한 훈장으로 전락하였고, 정식 계통에서 제외된다. 괴링에게 수여된 원래의 대 철십자 훈장은대철십자장은 괴링의 [[베를린]] 자택이 폭격으로 파괴되어 유실되어 복제품을 여럿 제작했는데, 그 중 백금 프레임으로 제작된 하나가 [[1945년]] 연합군 앞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했을 당시 착용되었다. 공식 기록사진에서 괴링은 [[푸르 라 메리트]], 기사 철십자 훈장과 대기사십자 철십자철십자장과 훈장을대철십자장을 같이 매고 다녔음을 볼 수 있다.
 
옷깃에 매다는 훈장인 대철십자장은 철십자기사십자 훈장은 기사 철십자 훈장과철십자장과 특징은 동일하나, 철십자 훈장이철십자장이 약 44mm 고 기사기사십자 철십자 훈장이철십자장이 약 48.5mm 인데 비해 63mm 로 상당히 컸으며, 원래 외부 모서리가 금으로 도색될 예정이었으나 은색으로 바뀌었다. 대 철십자 훈장은 기사대철십자장은 철십자기사십자 훈장과철십자장과 2급 철십자훈장의철십자장의 리본과 색이 같은 57mm 의 긴 리본이 사용되었다. 훈장의 케이스는 스바스티카와 독수리가 새겨져 있으며 외부선이 금색으로 된 적색 가죽이 입혀졌다. 수여 기준은 전투 수행에 대한 수훈이 아니라 '전쟁 중 효과를 발휘한 가장 성공적인 전략 결정' 을 이끌어 낸 장군 및 제독이 대상이었다.
 
==== 금성 대 철십자 훈장대철십자장 ====
 
[[2차대전]] 당시 금성 대 철십자 훈장은대철십자장은 독일을 승리로 이끈 뛰어난 전략을 세운 독일 장군과 제독을 대상으로 제정되어 수여하려 했으나 패전 전까지 수여된 적은 없었다. 전쟁 종전 후 연합군이 소수의 훈장 모형을 발견했는데 현재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의 군사 컬렉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모형은 기존의 훈장과 같지만 중앙 부분의 철십자 훈장만철십자장만 1939년형이며, 1급 철십자 훈장과철십자장과 비슷하게 핀으로 가슴주머니에 매달 수 있었다.
 
== 전후 ==
[[2차대전]] 후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제도는 파기되었지만 수여자들은 여전히 착용하고 다닐 수 있었다. [[1957년]] [[독일]] 연방정부가 스바스티카 사용을 전면 금지한 대신에 정부는 수여자들이 1914년형 철십자 훈장과철십자장과 비슷하게 스바스티카 대신 백엽잎곡엽 모양이 중앙에 들어간 철십자 훈장을철십자장을 착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으며, 다른 대부분의 [[2차대전]] [[나치 독일]]의 훈장도 스바스티카를 삭제한 형식이면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다만 [[친위대 (나치)|친위대]] 근속근무장 같이 [[나치]]의 조직과 관련이 있거나 [[오스트리아]], [[주데텐란트]], [[메멜]]지역 합병을 기념하는 기장 등 [[나치 독일]]의 확장을 의미하는 훈장은 금지했다.
 
[[독일 연방군]]이 [[코소보]]나 [[아프가니스탄]] 등지에 파병되어 근무하게 되면서 철십자 훈장이나철십자장이나 다른 군사 훈장 수여 제도를 복귀시키자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2차대전]] 후 독일 연방군에게는 군사 공적에 대한 훈장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2007년]] 독일 연방 의회에는 철십자 훈장의철십자장의 복귀를 요구하는 5000명 서명의 청원서가 제출되기도 했다. [[2008년]] [[10월]]에 독일 국방부 장관은 철십자 훈장철십자장 대신에 [[연방군 공로 훈장공로훈장]]({{llang|de|Ehrenzeichen der Bundeswehr}})에 속하는 연방군 무훈 명예 십자훈장({{llang|de|Ehrenkreuz der Bundeswehr für Tapferkeit}})을 새로 만들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