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폰 파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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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요제프 헤르만 미하엘 마리아 폰 파펜 추 쾨닝겐'''({{llang|de|Franz Joseph Hermann Michael Maria von Papen zu Köningen}}, 1879년 10월 29일 ~ 1969년 5월 2일)은 독일의 [[귀족]], [[참모]]장교, 정치인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며 독일 가톨릭 정당인 [[독일 중앙당]]의 당 대표를 지냈다.<ref>에드몽 파리《예수회의 비밀 역사》P 212</ref> 1932년 [[독일의 총리]]를 지냈으며, 1933년 ~ 1934년에는 [[아돌프 히틀러]] 밑에서 부총리를 지냈다.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에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측근 조언자로 활동했으며, 히틀러를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을 품고 그를 총리에 임명하도록 힌덴부르크를 설득했다. 그러나 정작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뒤 [[장검의 밤]] 사건 때 권력을 잃고 거세당했다소외당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끌려나왔으나 유죄를 선고받지는 않았다. 다만 [[서독]]에서 치러진 자체 재판에서는 8년 노역형을 선고받아 1949년까지 복역했다. 1950년대에 정치생활을 재기하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바티칸 교황청은 그를 다시 중용했다. 1959년 [[비오 12세]]의 후임으로 [[요한 23세]]가 교황이 되자 파펜을 개인 고문(secret chamberlain)으로 임명했다.<ref>《위책》P12</ref> 파펜은 1969년 5월 2일에 89세를 일기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