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동맹파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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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맹파업'''(九老同盟罷業)은 [[1985년]] [[6월 24일]] [[구로공단]]의 [[노동조합]]들이 연대하여 벌인 [[파업]]이다.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동맹파업이었다.<ref name="우리노트">근현대사 네트워크, 우리 현대사 노트, 서해문집, 2007, ISBN 89-747483-83307307-7</ref>
 
==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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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1970년대]]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경제성장의 한 축이었던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였다. 특히 당시 주된 산업이었던 [[가발]], [[섬유]], [[봉제]], [[옷|의류]]와 같은 노동현장에서는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하루 14시간에서 16시간, 한 달에 28일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임금]]은 매우 적게 받았다. 또한 노동환경도 열악하여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결핵]]과 같은 질병을 앓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70년]] [[전태일]]은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구조적인 한계를 절감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말과 함께 분신하였다.<ref>서중석, 한국현대사, 웅진지식하우스, 2006, 281쪽, ISBN 89-01-04959-7</ref>
 
전태일의 분신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노동자의 권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 이래 대한민국의 [[군사독재]] 정부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공공연히 탄압하여 왔다. 정부는 [[YH 사건|YH노동조합 사건]]과 같이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에 대해 [[경찰]]을 동원하여 해산하였다.<ref name="메이데이백년">역사학연구소,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 서해문집, 2006, 156-157쪽, ISBN 89-747483-83215215-1</ref> 한편,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가 해고된 [[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직장을 구하는 데 차별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갖은 이유를 들어 노동조합의 결성 자체를 불법화하였다.<ref name="서해근현대사">역사학연구소,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사, 서해문집, 2006, 443쪽, ISBN 89-747483-83208208-9</ref>
 
뒷날 선일섬유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하였던 김현옥은 당시의 노동현장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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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6월 24일]] 위원장이 구속된 대우어패럴 노동조합은 당시 미싱사로 일하던 [[심상정]] 등의 주도로 파업에 돌입하였다.<ref>인물과 사상, 2004년 6월호, 56-73쪽</ref> 이에 연대하여 선일섬유, 효성물산, 가리봉전자 등의 노동조합이 파업에 나섰다.<ref name="우리노트"/> 이외에 부흥사, 세진전자, 룸코리아, 남성전기 등 구로공단의 많은 노동조합이 파업에 참여하였다.<ref name="서해근현대사"/>
 
파업에 참여한 노동조합들은 1983년부터 세워진 민주노조들이었으며 이들은 대우어패럴 노동조합 간부의 구속을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으로 인식하였으며, 바로 다음에는 자신들이 그와 같은 처지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꼈다.<ref>서해문집, 내일을 여는 역사 24호, 2007, 234쪽</ref> 당시 노동조합들은 이를 '민주노조 각개격파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였다.<ref>심상정, 당당한 아름다움, 레디앙, 2008년, 41쪽, ISBN 89-95959952-995222-X</ref>
 
당시 동맹파업은 구속된 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의 석방과 함께 블랙리스트의 철폐, 노동권의 보장 등도 요구하였다. [[전두환]] 정권은 경찰을 동원하여 파업 해산에 나서는 한편 30여명의 노동자를 구속하였다.
 
=== 결과 ===
구로동맹파업은 대우어패럴이 구사대를 조직하여 파업노동자를 폭력적으로 해산시킴으로써 1주일 만에 끝났다. 공장은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으며 파업을 주도한 44명의 노동자가 구속되었다. 구속된 노동자들은 불법파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다.<ref>심상정, 당당한 아름다움, 레디앙, 2008년, 43쪽, ISBN 89-95959952-995222-X</ref>
 
파업의 결과 1천여 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다. 노동조합 운동가들은 기업별 노동조합이 권력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노동조합의 연대를 모색하게 되었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심상정]], [[김문수 (정치인)|김문수]] 등을 중심으로 [[서울노동운동연합]]을 결성하였고 이는 이후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ref name="역사비평">역사문제연구소, 역사비평, 1995년 여름호, 104쪽</ref>
 
한편, 파업 이후 구속되지 않은 노동운동가들은 길게는 10년에 걸친 수배생활을 해야 했다. [[심상정]]의 경우에는 [[1993년]]에 재판에 기소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 받았다.<ref name="당아">심상정, 당당한 아름다움, 레디앙, 2008년, 50쪽, ISBN 89-95959952-995222-X</ref> 이후 [[2001년]] 2월 정부는 구로동맹파업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당시 사건 관련자들의 명예를 회복하였다.<ref name="당아"/>
 
==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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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동쟁의}}
 
{{대한민국의 기타 사건 및 사고}}
[[분류:1985년 대한민국]]
[[분류:대한민국의 노동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