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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독부'''(內獨部,Minister of Intra-German Relations) 또는 '''독일내 교류부''', '''연방내독관계부''', '''내독관계부'''는 [[서독]]의 옛 연방 [[정부 부처]]였다. 독일어 약자로 '''BMB'''라고 한다. 서독이 초기에는 [[동독]]까지 자기 영토로 주장했기 때문에 ([[독점적 통치권]]) 외무부와는 별개의 부서가 되었다.
==전독부==
 
==전독부==
1949년 서독 정부 수립과 동시에 전독부(全獨部, Bundesministeriums für gesamtdeutsche Fragen)가 설립되었다. 서독만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고, 동독을 소련의 [[괴뢰정부]]로 규정한 [[할슈타인 독트린]]([[유일합법정부론]])에 기초한 동독 담당 부서였다.
 
 
1991년 독일이 통일되고 연방내독부(BMB)의 대부분은 연방내무부(BMI)로 편입되었으며, 1991년 1월 18일 내독부가 해체되었다.
 
==동독 내란==
서독 내독부가 동독의 내란을 일으켰다는 보도는 없지만, 동독 주민들은 처음에는 여행자유화 시위를 하였고, 그 다음에는 민주화 시위로 시민들의 시위 방향이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통일을 원하는 시위를 전국적으로 일으키면서, 동독이 붕괴되며 서독에 통일되었다.
 
통일 당시 서독 1인당 GDP는 동독의 3배, 서독 GDP는 동독의 10배였다. 부자 서독에서 통일 요구 시위가 난다고 가난한 동독을 강제로 흡수할 수는 없었다. 오직 가난한 동독에서 스스로 대규모의 통일 요구 시위가 발생했어야만 부자 서독에 흡수될 수 있었고, 동서독 정부가 묘책으로 대규모 시위를 방조했거나 기획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여하튼, 가난한 동독에서 사상 최대의 통일 요구 시위가 발생하고, 동서독이 평화통일에 성공했다. 남북한 평화통일에서도 이러한 절차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슈타지==
소련 [[KGB]] 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도 받았던, 동독 정보부 [[슈타지]]는 서독 내독부를 무력화 시키기 위해 상당한 스파이전의 노력을 했다. 반대로, 동서독이 평화통일에 성공했다는 것은, 서독 내독부가 [[KGB]] 보다 악랄한다는 [[슈타지]]를 무력화 시켰다는 반증이다.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하려면, [[대한민국 통일부]]가 북한 [[보위부]]를 무력화 시켜야만 한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돈문제화폐 문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던 1989년 11월 10일 내독부 과장이었던 [[에버하르트 쿠어트]](Eberhard Kuhrt)는 동서독이 전쟁하지 않고 교류, 화해를 거쳐 평화통일을 하게 된 이유는, 결국 서독의 막대한 돈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액권==
{{본문|500 유로500유로 지폐}}
[[500 유로500유로 지폐]]의 폐지에 대해 프랑스, 이탈리아와 독일의 대립이 있다. 서독 마르크화의 최고액권은 1000 마르크 지폐였다. [[유로화]]로 통합될 때, [[500 유로500유로 지폐]]로 바뀌었다. 한화로 50만원~60만원 정도 가치이다.
 
50만원권 고액 지폐 발행을 비판하는 핵심논거가 범죄조직에 흘러들어가는 검은돈이라는 비판이다. 그러나, 서독이 동독이라는 거대한 조직에 비공식적으로 막대한 마르크화를 검은돈으로 지원할 때, 50만원권이 매우 유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0만원권 발행이 남북한 평화통일에 큰 도움이 된다는 시사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