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헌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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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효헌황제 유협'''(漢 孝獻皇帝 劉協<ref>《[[:zh:s:後漢書/卷9|後漢書/卷9]]》 “孝獻皇帝諱協[...]”</ref>, [[181년]] ~ [[234년]])은 [[후한]](後漢)의 제14대이자 마지막 황제로 [[자 (이름)|자]]는 '''백화'''(伯和)이다. 휘는 아버지 [[후한 영제|영제]](靈帝)와 모습이 닮았기 때문에 지은 것이다.<ref>장번(張璠), 《한기》(漢記) [범엽, 《후한서》 권9 효헌제기 이현주에 인용]</ref>
== 생애 ==
=== 황제 즉위까지 ===
영제의 차남으로 생모는 [[하태후]]에게 살해당한 [[왕미인]]이다. [[189년]] 7월, 진류왕(陳留王)에 봉해졌다. <ref>《[[:zh:s:後漢書/卷9|後漢書/卷9]]》 “孝獻皇帝[...] 靈帝中子也。母王美人,為何皇后所害。中平六年四月,少帝即位,封帝為勃海王,徙封陳留王。”</ref>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다는 주위의 평가를 받았었다. [[십상시]](十常侍)의 난에 형 [[후한 소제 (13대)|소제]](少帝)와 같이 궁을 떠나 몸을 잠시 피했었다. 서량의 군벌 [[동탁]](董卓)이 변란의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소제와 이야기했으나 그가 알아듣지 못해 다시 진류왕에게 묻자 진류왕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동탁은 진류왕을 키운 것이 자신과 성씨가 같은 [[효인황후|동태후]]인 것을 알고 소제를 폐위시키고 진류왕을 황제로 세울 것을 마음먹었다.<ref>사마광, 《자치통감 삼국지》, 신동준 역, 살림출판사, 2004</ref> [[낙양]](洛陽)에 입성한 동탁이 소제를 폐하고 진류왕을 임금으로 세우니 그때 헌제의 나이가 불과 9세였다.<ref>《[[:zh:s:後漢書/卷9|後漢書/卷9]]》 “孝獻皇帝[...]中平六年[...]九月甲戌,即皇帝位,年九歲。”</ref> 연호를 초평(初平)이라 하였다. 동탁이 정치
=== 동탁의 죽음과 이각과 곽사의 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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